정부가 상시 구조조정 체제를 선언하고 나섬에 따라 이를 뒷받침할 제도적 인프라 구축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상시 구조조정체제에선 기업부실이 발생하면 그때 그때 정리해야 하지만 그 처리를 담당할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경우 구두선(口頭禪)에 그치고말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부실채권시장이 원활하게 움직이기 위해서는 부실정리의 각 단계(부실채권 가치산정→매입→재구조화)별로 전문화된 자산관리회사와 투자자가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정부가 주도하는 공적처리기구,즉 자산관리공사가 부실채권시장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CRC,CRV라 이름 붙여진 민간 구조조정 회사가 있으나 자본금 규모가 영세하고 전문성 부족 등의 문제로 인해 사실 있으나마나한 존재에 불과한 실정이다.

◇공적자금과는 차별화된 부실채권 정리 성과=외환위기 이후 자산관리공사는 부실채권정리기금을 활용해 대대적인 부실채권 정리에 나섰다.

지난해 말까지 액면가 기준으로 85조3천억원의 부실채권을 34조9천억원(액면가대비 41%수준)에 인수했다.

이중 55%에 해당하는 46조9천억원(매입가 19조2천억원)을 매각해 21조7천억원의 자금을 회수했다.

이 과정에서 2조5천억원(12.7%)의 매각이익을 올려 회수가 의문시 되는 다른 공적자금과는 차별화되는 성과를 올리긴 했다.

그러나 이러한 대대적 부실정리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말 현재 부실채권 규모는 약 1백50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자산관리공사,투신사,기타 민간투자자가 보유하고 있는 채무미변제 채권 74조원에다 금융기관이 보유중인 고정이하 여신 약 76조원(총여신대비 12.3%)을 합한 금액이다.

물론 여기에는 올해 발생한 동아건설,현대건설 등에 대한 부실채권은 포함돼 있지 않다.

◇상시구조조정체제 지원의 한계=금융·외환위기와 같은 긴박한 상황에서는 공적처리기구 위주의 부실채권 정리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고 나름대로 성과를 거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공적처리기구만으로 상시구조조정 체제를 뒷받침하는 데는 분명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투자위험성이 높은 부실채권 정리에 국민부담이 불가피한 공적자금을 계속해서 투입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공기업 체제로는 빨바른 대응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자산관리공사만 하더라도 기금의 한시성(限時性)에 따른 고급인력 이직문제,보유 부실채권의 질적악화(미매각부실 채권의 80%가 매각이 상대적으로 어려운 기업부실 채권)등의 한계를 이미 노출하고 있다.

◇시급한 민간 부실채권 전담기관 육성=공적처리기구 위주의 부실채권 정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부실채권 유통시장의 활성화와 민간 부실채권 전담기관의 육성이 시급한 과제로 등장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상시적 퇴출이 가능하도록 기업퇴출제도를 정비하는 일이 중요하다.

현행 기업퇴출제도는 회사정리법,화의법,워크아웃제도로 복잡하게 분리돼 있어 퇴출의사 결정이 지연되고 있을뿐 아니라 기준자체에도 문제가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기업퇴출기준 설정시 경제적 가치 기준의 비중이 지나치게 낮고 담보채권의 변제우선 순위도 매우 뒤처져 있어 구조조정 회사가 부실채권을 인수할 매력이 그 만큼 떨어지고 있다.

신속한 퇴출결정을 위한 제도적 정비와 함께 실제 부실채권을 정리할 주체를 육성하는 일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부실채권 정리에 있어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는 자산관리공사를 민영화해 투자은행으로 키우는 한편 민간 구조조정회사를 적극 육성할 필요가 있다.

자산관리공사는 환란 이후 부실채권 정리과정에서 많은 경험을 축적한 강점을 갖고 있다.

이를 구조조정에 특화된 투자은행으로 발전시킬 경우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동남아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된다.

민간구조 조정회사 육성을 위해서는 61개나 되는 CRC,CRV의 구조조정을 통한 대형화와 함께 수요기반 확대가 요구된다.

리츠 등을 통해 부동산 수요기반을 확충하고 과다한 부실채권 실사비용을 줄임으로써 투자수익률을 높이는 것도 매우 긴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