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재정파탄 문제를 놓고 원인과 대안에 대한 논의가 무성하다.

일각에서는 의료수가 인상 때문이라고 주장하나, 보험자의 실증자료에 의하면 최근 적자의 직접 원인은 의약분업임을 부인키 어렵다.

그러나 재정적자의 실체는 오래전부터 제기돼온 구조적이고 만성적인 문제다.

부실한 재정수입에 대한 대안없이 선심성 재정지출을 확대하면서 누적적자를 부풀려온 결과다.

최근 정부 여당이 내놓은 재정대책을 보면 문제에 대한 균형적 접근보다 땜질처방에 급급하거나 실효성이 의문시되는 정책들의 나열로 전시효과만을 겨냥한 듯해 우려가 앞선다.

정부 여당의 정책기조는 수입 확대보다 주로 지출관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며 특히 공급자 규제 강화에 무게를 두고 있다.

그러나 각종 정부규제의 결과에서 보듯이 이러한 규제일변도의 정책들로는 문제를 풀기보다 왜곡된 의료체계를 악화시키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우선 ''주사제 사용을 불인정한다''는 방안만 하더라도 질병특성과 진료과정의 다양성을 무시하는 무리한 규제다.

주사제 사용 억제로 재정을 절감하겠다는 눈앞의 목표에 급급해 적정 의료서비스 제공을 국가가 막는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발생하는 각종 의료사고의 책임문제도 야기될 수 있다.

가장 강조하는 부당.허위청구 감시방안 역시 추가로 투입되는 비용문제는 차치하고 부당청구범주에서부터 누수비용규모에 이르기까지 논란이 많은 상태에서 이를 주요 절감방안으로 내세우는 것은 실제 비용절감 효과보다 특정집단의 비리폭로를 통한 카타르시스로 문제를 면피하겠다는 비난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많은 비용을 들여 약품 오.남용을 감시하고 규제하려면 의약분업은 왜 했는지에 대한 반문까지 제기될 판이다.

의사 1일 적정환자수를 제한하는 방안 또한 가뜩이나 분업으로 이용량을 늘려놓은 상태에서 선택을 수요자에게 맡겨 놓은 채 공급자만 규제할 경우 이용접근성을 제한함으로써 국민불편을 가중시킬 수 있으며 자원의 효율적 활용에도 위배된다.

포괄수가제 방안도 국내실정을 고려할 때 비용절감의 실효성과 부작용 등에 있어 논란이 많고 시범사업결과 문제점들이 제시된 바 있어 당장 시행은 또다른 정책부실을 초래할 수 있다.

비용절감 효과를 가정한다손 치더라도 실시를 위해선 추가적인 재정투입이 필요하다는 점 역시 신중한 접근을 필요로 하는 이유다.

문제는 이러한 방안들이 개념적 논의수준이기 때문에 실제 시행을 위해선 면밀한 계획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결론적으로 만성적인 적자구조를 해결하기 위해선 안정적 수입 확보와 의료체계 구조개편을 포함한 효율적인 지출관리방안 등 근본방안들이 마련돼야 한다.

하지만 정책부실을 막기 위해선 섣부른 실시보다 심도 있는 논의와 준비가 선행돼야 한다고 본다.

나아가 단기적자 규모를 줄이기 위해 의약분업의 틀을 보험재정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보완해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방안과 의보통합의 부정적 효과를 최소화하는 방안들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의료는 다양한 전문가가 팀워크로 수행하는 서비스이며, 이들의 협조없이는 의료정책의 기대효과를 거두기 힘들다.

준비 안된 의약분업 실행으로 국민들이 겪은 고통 못지 않게 의료전문가들 역시 많은 상처를 입었으며 국민건강을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할 동반자간에 갈등과 반목만 깊어진 상태다.

아울러 묵묵히 의료현장을 지켜온 대다수 전문가들은 국민들의 불신어린 시각을 접하면서 직업적 좌절에 빠져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공급자의 도덕적 해이는 일벌백계해야겠지만 공급자 비리가 적자의 주범인양 여론몰이를 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며 의료보장 부실의 치유기회를 또 상실하는 것이다.

아무쪼록 정책실패를 인정하고 정치적 명분보다는 의료정책의 합리성에 의거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정부의지만이 현재 난국을 헤쳐가는 길일 것이다.

lsh0270@mm.ew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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