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백년은 족히 된듯한 골동품 카메라와 시계부품 환등기...

부산 광한리 바닷가 인근에 있는 작가 이진용씨의 작업실은 이런 골동품들로 가득 차 있다.

작가가 세계 각국의 골동품 가게와 벼룩시장을 뒤져 가져온 것들이다.

골동품은 그의 주된 작품 소재(오브제)다.

이 씨는 이런 오브제들을 상자에 담고 그 안에 액체상태의 레진(resin)을 부은후 박제함으로써 새로운 골동품을 만들어 낸다.


이씨는 오는 15일부터 서울 청담동 박여숙화랑에서 열리는 개인전에서 1백여점의 입체작품을 선보인다.

''서기 3001년의 나에게 보내는 소포''라는 전시명칭이 작품만큼이나 독특하다.

"현재의 내가 미래의 나에게 보내는 기념물로 일종의 타임 캡슐"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작가는 수 억년 된 화석처럼 대를 거듭해 되물려지다 먼 미래에도 살아 숨쉬는 ''불멸성''을 추구하고 있는 셈이다.

골동품같은 그의 작품은 복잡한 과정을 거쳐 완성된다.

우선 오브제를 나무상자에 넣고 그 위에 액체상태의 레진을 여러 차례에 걸쳐 붓는다.

경화제를 혼합해 딱딱하게 굳어지면 아크릴로 봉한 후 나무상자와 아크릴 표면을 사포로 수없이 갈고 왁스칠로 마무리한다.

이같은 힘든 작업을 거쳐 벽에 걸리는 입체작품은 한편으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골동품이고 다른 한편으론 시간이 흐를 수록 존재가치가 높아지는 예술품이다.

최근 들어 작가는 골동품 뿐만 아니라 코르크 마개,심지어 생선 꽃까지도 작품 소재로 삼고 있다.

그는 90년대에 바이올린 첼로 등의 악기를 오브제로 사용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근래 작업은 오브제가 악기에서 골동품으로,화면은 캔버스형태에서 박스형태로 변하고 있다.

이원일 성곡미술관 수석큐레이터는 "그는 전혀 미술적 방식이 아닌 수집과 채집 그리고 가공을 통해 독특한 미의 세계를 창출해 낸다"고 평했다.

이제 40대에 접어든 그는 국내외에서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는 작가다.

샌프란시스코 아트페어의 조직위원장인 토머스 하트는 그를 미국 현대미술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했던 조셉 코넬(1903~1972)의 계보를 이을 작가라고 격찬했다.

올초 미국에서 열린 아트팜비치,마이애미 아트페어에서 그의 작품을 뉴욕 제이슨 멕코이화랑,제임스 야로쉬화랑 등이 구입할 정도로 주목을 끌었다.

지난 2월에는 린다 더햄화랑의 초청으로 뉴멕시코에서 초대전을 가졌다.

그는 다작가이기도 하다.

1년에 무려 3백∼4백점에 이르는 작품을 만들어 낸다.

하루 15시간 이상 작업실에 틀어박혀 작업에 몰두하는 열정에 따른 결과다.

개인전만 해도 이번이 12회째다.

작가는 요즘 작업실 한켠에서 또 다른 실험을 하고 있다.

중국 부잣집 대문에 걸려있던 현판을 오브제로 삼아 뭔가를 만들어 내고 있다.

''진덕무강(덕은 영원하다는 뜻)''이라고 쓰여진 활자의 의미처럼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통해 ''대가''로서의 길을 닦아가고 있는 셈이다.

오는 24일까지.

(02)544-7393

이성구 기자 s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