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애 < (주)서울포럼 대표 / 건축가 >

1980년대 일본이 뜨고 미국이 가라앉을 때,미국의 유명한 부동산들이 줄줄이 일본 기업에 넘어 갔었다.

뉴욕의 상징이라는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까지 팔렸을 때 미국민들은 자존심이 상해서 한숨을 쉬었다.

그로부터 10여년 뒤,일본의 거품 경기가 꺼지고 미국이 경쟁력을 회복하자 일본에 넘어갔던 부동산들이 다시 회수됐다.

''역시 미국''인가,''역시 경제''인가,''역시 시장''인가.

냉혹할 정도로 실용적인 미국이다.

부동산개발 때문에 흥하고,부동산개발 때문에 망하는 것은 동서고금에 끝없이 반복되는 현상이다.

우리나라의 지난 반세기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60년대 인프라 개발, 70년대 공공에 의한 개발 촉진, 80년대 아파트 붐을 통한 민간경기,그리고 90년대에는 아파트뿐만 아니라 하늘 모르고 치솟은 상업용 부동산개발.사이사이에 경기 과열억제와 경기촉진,투기억제와 투자촉진의 작은 사이클을 반복하면서 개발성장을 주도해 왔다.

부동산개발 때문에 경제가 쇠하고 기업이 망하기도 했다.

줄줄이 넘어진 기업치고 부동산에 발목 잡히지 않은 기업이 없다.

딱히 건설회사뿐 아니라 부동산에 자금이 묶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기업들이 수두룩하다.

금융권도 함께 흔들리며 부실해졌다.

''부동산 불패 신화''는 분명 끝났다.

급속한 개발성장 사이클이 끝난 것과 함께 사라진 신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부동산개발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새롭게 변화하는 환경에서 운용할 새로운 작전,새로운 기법이 필요한데 아직도 과거 신화의 잔재가 작용한다는 것이 문제다.

''한국부동산신탁''의 이번 부도사태를 한마디로 표현하면,''가장 리스크가 큰 부동산 개발이라는 사안을,가장 위험부담없이 해보겠다는 안일한 생각 때문에 빚어진 사고''다.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시기에,경직된 공기업이 위험천만한 부동산개발을 책임진다는 것은 시작부터 어불성설이었다.

시장의 치열한 경쟁시스템에 비해 조직이나 인력이나 운영면에서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우리사회는 부동산개발의 본게임은 아직 시작조차 되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땅짚고 헤엄치기''의 관성,땅만 확보되면 은행돈 들어오고,허가만 받으면 분양 계약금 들어오고,분양은 되지 않을리 없다는 희망사항만 난무했다.

또 열개를 손해 봐도,하나만 잘 건지면 메울 수 있다는 주먹구구식 요행수도 여전히 작용한다.

이런 관성은 이제 정말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번 사태로 확실히 배워야 한다.

개발자 정치권 행정단체 토지소유주 분양대상자 입주예정자 모두 이런 막연한 기대를 버리지 않는 한 부동산개발은 악순환을 반복할 것이다.

''본격적인 부동산 게임''이란 리스크 게임이다.

그 본질은 ''남의 땅에, 남의 자금으로,남이 쓰고 싶은 공간을 만드는 사업''이다.

모두 남의 것을 운용하는 것이니 위험 투성이다.

안정된 사업성,안전한 사업이란 거의 없다.

밑지지 않을 정도로 운영경비만 빠진다 하더라도 성공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살벌한 시장 게임인 것이다.

그러한 위험부담 때문에 선진경제권에서의 부동산개발은 신중에 신중을 거듭한다.

핵심은 두가지다.

운영수익이 있느냐,그리고 리스크를 어떻게 커버하느냐.이에 대한 개발 시나리오가 서지 않는 한 과감히 포기한다.

자존심이나 책임이나 요행을 앞세우지 않고,완전한 시장 경제를 전제로 한다.

우리도 이렇게 될 수밖에 없다.

''공공에서 책임지는 개발''이란 성립할 수 없다.

''부동산이란 본질적으로 시장에서 성립하는 개념''이라는 인식을 뿌리내려야 한다.

개발금융 분양마케팅 수익계산 계약 등 모든 관련 행위에서-.

개발 부실이 과연 ''한국부동산신탁''만일까.

개발불패 신화는 우리나라 곳곳에 여전히 존재한다.

부풀려진 소수의 성공사례,정치권의 부추김,개발 이권자의 추임새 때문에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민간사업자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도 냉정하게 시장을 돌아보자.

jinaikim@www.seoulforu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