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워싱턴은 한국 대권후보들의 각축장 같았다.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를 위시해 김근태 김덕룡 이부영 이인제 한화갑 의원 등 이른바 잠재 대권후보들이 조지 W 부시 미국대통령의 취임식에 맞춰 대거 워싱턴을 찾은 것이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남한을 방문하기전 한·미간 조율이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명분을 내세워 미국관리들에게 "한·미정상회담의 조기개최를 주장했다"는 무용담(?)을 소개한 여당의 대권후보가 있었는가 하면 "김대중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베푸는 배려의 절반만 야당에 할애해도 한국정치는 잘 풀릴 수 있을 것"이라는 야당의원의 일침에 이르기까지 특파원들에게 쏟아놓는 이들의 화두는 각양각색이었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지해질수록 이들이 우려하는 핵심은 한국경제로 귀착됐다.

특히 야당의원들은 "3월이나 4월에 한국에 위기가 올 수 있다.
거리로 내몰리는 실직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자금동맥경화에 녹아나는 기업의 고충이 날로 커지고 있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한국을 ''노동독재국''이라고 표현한 한 여당대권후보의 발언이었다.

강성노조가 협조하지 않는 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어느 개혁도 쉽게 이뤄지기 힘들다는 의미에서 불쑥 던진 소신발언이다.

한국전력 분할매각과 국민·주택은행 합병과정에서 극렬하게 분출된 노조운동은 이를 대변하는 좋은 예라는 뜻이다.

"일본에서 35개국을 표본으로 투자하고 싶은 나라를 조사한 결과 한국은 꼴찌에서 두번째인 34위를 했다"고 소개한 이 대권후보는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성격이 바뀌지 않는 한 외국인들의 한국에 대한 인식도 바뀌기 힘들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강성노조에 끌려 다니던 영국은 노동관련법을 다섯차례나 개정해가며 노동운동의 추세를 바꿔놓았고 그 결과 18%에 이르던 실업률이 4%대로 떨어졌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정부는 한국경제의 미래가 금융개혁과 기업구조조정에 달려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 대권후보의 주장대로 두가지 개혁과제의 밑바탕에는 노동시장이라는 풀기 어려운 난제가 깔려있다.

실제로 금융개혁과 기업구조조정이란 용어는 포장에 불과하다.

투명성 제고,지배구조 개선등의 또다른 개념들이 이들 개혁과제에 내포돼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핵심은 사람 잘라내기,즉 해고문제라고 볼 수 있다.

"다른 사람을 위해 내 스스로 자리를 물러남으로써 더 많은 자리가 생길 수 있다"는 확신이 서지 않는 한 사활의 기로에 선 근로자들이 해고상태를 쉽게 수긍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거리로 내몰릴 근로자들이 저항하는 한 진정한 의미의 금융개혁과 기업구조조정은 불가능할 뿐아니라 껍데기 구호에 불과하다.

결국 "개혁의 첫 단추는 노동시장에서 시작됐어야 했고 자리에서 쫓겨나도 새 일자리를 찾을 수 있다는 신뢰분위기를 구축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됐어야 했다"는 것이 또다른 야당대권후보의 주장이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일자리 창출에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보장된 미래에 대한 확신이 자리잡으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뜻이다.

한 야당의원은 "이런 단순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개혁을 외치는 정부는 ''2월까지 끝낸다''는 마감시간까지 정해 놓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정부가 쏟아부은 공적자금은 1백조원이 넘는다. 하지만 개혁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고 믿는 국민은 없다. 물먹는 하마처럼 그 많은 돈이 일부의 나눠먹기 제물로 없어졌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희망없는 부실덩어리에 처넣기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처음부터 사회안전망 구축에 투입했어야 옳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양봉진 워싱턴 특파원 yangbongjin@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