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백kg은 족히 돼보이는 통나무를 얹은 지게가 조금씩 움직였다.

주변은 일순간 적막에 싸였다.

설마하는 눈초리는 기대감으로 차올랐다.

"끄으응" 용쓰는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그 무거운 통나무가 번쩍 들렸다.

첫번째 시도에서 받침대가 부러져 실패했던 관광객 안기욱씨의 입끝이 씨익 올라갔다.

"와"하는 함성과 함께 박수가 터졌다.

앞으로 서너 발,다시 뒤로돌아 서너 걸음.

"혹시 전생에 나무꾼이 아니었나요" "같이 온 선녀는 어디 있어요"

해(陽) 뜨는(襄) 고장 강원 양양의 어성전(魚城田) 2리.

44가구,주민 1백명뿐인 양양 남대천 최상류 마을인 이곳의 한겨울 고요했던 리듬이 깨져버렸다.

요란한 풍물소리와 함께 "현대판 탁장사"의 탄생으로 들썩였다.

마을의 전통놀이를 부활시켜 녹색 농촌체험관광상품으로 만들기 위한 시범무대가 멍석을 제대로 깔아 놓은 흥겨운 잔치판으로 북적였다.

이날 잔치판의 얘깃거리는 탁장사.

탁장사는 조선말 탁씨 성을 가진 힘센 사람이다.

"엎어져도 탁씨,넘어져도 탁씨"라고 할 정도로 탁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아직 많다는 떡메마을 송천이 고향이다.

그 탁장사가 전통놀이의 주인공이 된 연유는 이렇다.

대원군은 경복궁 중건을 위해 전국의 제대로 자란 나무란 나무는 모두 서울로 모아들였다.

나무를 구하던 양양과 강릉주민들은 마침 경계지점(지금의 바두재)에 뿌리를 내린 아름드리 나무를 차지하려고 다투었다.

밑둥을 잘라 넘어지는 쪽 주민이 나무를 갖기로 했다.

나무는 공교롭게도 경계선에 쓰러졌다.

다시 나무를 지게로 져 올리는 쪽이 갖기로 정했다.

강릉의 장사는 그만 무릎을 꿇었고,양양의 탁장사는 번쩍 져 올려 승부를 갈랐다는 것.

이를 기념한 놀이가 만들어져 내려오다 맥이 끊겼는데 이번에 문화관광상품의 하나로 부활한 것.

주민과 학계,관이 뭉쳤다.

"문화관광사랑"의 오순환(안양대 겸임교수)박사가 앞줄에 섰고 양양군과 농업기술센터,룩코리아와 대자연레저본부 등이 뒷받침을 했다.

겨울이면 일거리가 없어 손을 놀려야 하는 이 마을 주민들의 농외소득증대,도시민들의 농촌체험과 추억살리기란 1석2조의 효과를 올리기 위해 힘을 모았다.

체험놀이행사는 하일라이트인 탁장사 지게지기를 전후로 탁장사 넘어뜨리기,줄당기기,지게비석치기,목도놀이 등 모두 다섯마당으로 진행됐다.

함께 한 어린아이들까지 모두 한번씩은 참여할수 있게끔 했다.

한쪽에는 도끼로 장작을 패볼수 있는 마당도 두었다.

주민들의 정성이 잔치맛을 더욱 살렸다.

여기저기 피워논 장작불에 노랗게 구운 고구마를 건네는 손이 투박하면서도 따뜻했다.

요즘 한창 많이 난다는 양미리구이는 횡재였다.

옛 맛과 시간에 대한 아스라한 기억을 고스란히 되살려 주었다.

"우리 전통놀이에서 얻는 흥겨움과 시골인심을 가져가세요"

마을 이장 임순영씨의 말에 박동훈(경기도 고양시)씨가 맞장구를 쳤다.

"소박한 놀이에 담아 전하는 인심 한번 푸짐하네요"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