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오르세 미술관 한국전-인상파와 근대 미술전''에 관람객이 줄을 잇고 있다.

한국 관객들에게 인기를 끄는 인상파전의 매력은 무엇일까?

우리들이 교과서에서 배운 인상주의 대표작가인 모네,르누아르,드가를 비롯해 사실주의 작가인 밀레,쿠르베와 후기 인상주의 작가인 반 고흐,고갱,세잔의 대표작을 직접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기 때문인 것 같다.

게다가 책으로나 접하던 세계적인 작가들의 예술적 성가를 확인하고 그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열린 전시장이어서가 아닐까.

''인상파''라는 말을 만들어낸 클로드 모네(1840∼1926)의 ''해돋이 인상''(캔버스에 유채,50X65㎝)을 감상해 보자.

작품은 모네가 1872년에 제작,1874년 제1회 인상주의 전시회에 해당되는 그룹전에 출품,빛을 보게 되었다.

안개가 자욱하게 끼고 수평선 위로 붉은 태양이 동녘 하늘을 물들이며 힘있게 솟아오른다.

다른 화가들이 그린 그림들은 세밀한 부분까지 색칠되어 있고 사물의 형체가 뚜렷한데 비해 이 그림은 대충 칠한 것처럼 보인다.

지금까지 보아왔던 그림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이것이 인상주의 화풍을 탄생시킨 최초의 작품이다.

모네가 캔버스를 들고 야외로 스케치하러 나갔다가 일출의 장관을 보았다.

해가 떠오르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이 작품을 그렸다는 것이다.

당시 화가들에게는 야외 스케치가 흔한 일이 아니어서 모네도 물감을 꾹꾹 찍어놓은 것 같은 자신의 그림이 좀 생소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래서 모네는 ''해돋이''란 타이틀로 그룹전에 내려던 이 작품에 ''인상(印象)''이란 설명적인 말을 붙여서 ''해돋이 인상''으로 개제(改題)해 출품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전람회를 둘러본 어느 미술기자가 모네에게 무엇을 그린 거냐고 물었다.

모네는 서슴지 않고 "해돋이 인상"이라고 대답했는데 이 제목에서 착상을 얻은 기자는 다음날 ''인상파 전람회''라는 제목을 붙여 모네의 그림을 비난하는 기사를 썼다.

''인상파''라는 말은 바로 이 기사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모네는 파리에서 노르망디쪽으로 90㎞ 떨어진 자신의 집에 센강 물을 끌어들여 연못을 만들고 그 연못에 수련을 심어 그것을 즐겨 그렸다.

모네는 이 집에서 40여년을 살았는데 그는 집에서 하루에도 40여점씩 쉬지 않고 그림만 그렸다.

모네가 60세부터 87세의 나이로 세상을 뜰 때까지 27년 동안 매일 자신의 집 연못가에 앉아서 그린 ''수련''연작은 지금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모네를 ''수련의 화가''라고 일컫는데 그가 백내장에 걸려 그림을 그리기 어려운 지경에도 붓을 놓지 않고 수련을 그렸기 때문이다.

모네는 죽을 때까지 그림을 그렸지만 매우 가난하게 살았다.

이는 인상주의 그림에 익숙지 않은 비평가들로부터 혹평을 받아 작품을 팔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절대 기죽지 않고 파리 일류양복점에서 옷을 맞춰 입고 거드름을 피웠다.

월간 art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