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여권론자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최근 여성지 ''미즈''에서 이렇게 말했다.

"70년대엔 여성의 불평등한 지위가 생물학적 특성 탓이 아님을 입증해야 했다.

오늘날 ''불평등은 잘못된 것이고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이 일반화된 것만 해도 엄청난 변화다.

그래도 여성운동가는 여전히 간청, 로비, 시위해야 한다"

이런 얘기가 아니더라도 지난 4반세기동안 여성의 위치는 많이 변했다.

99년 북유럽의 여성 국회의원 비율은 40%를 넘어섰고,프랑스에선 모든 정당이 여성후보를 50%이상 공천하게 하는 ''남녀동수공천법''을 통과시켰다.

우리나라 역시 남녀고용평등법에 이어 여성발전기본법과 남녀차별금지법을 제정했고 국회의 비례대표 30%를 여성에게 할당하도록 했다.

우리의 현실은 그러나 이런 법적 수준과 너무 멀다.

사회 전반에서 여성을 남성과 같은 인간이 아닌 열등한 존재로 여기기 때문이다.

경찰 고위간부가 공식석상에서 ''여자는 얼빵해야지 똑똑하면 골치아프다''고 말하는 게 단적인 예다.

그 결과 유엔개발계획(UNDP)이 여성국회의원 고위관리자 여성1인당 실질소득등을 고려해 산출하는 여성권한지수는 1백2개국중 78위고,대졸여성 취업률은 남자의 절반에 훨씬 못미친다.

기껏 함께 출발해도 여성에겐 승진은 물론 능력을 발휘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서울대 출신으로 캐나다 토론토대학에서 과학사를 가르치는 홍성욱(39)교수의 얘기는 문제의 근원을 전해준다.

''차별은 직접적이고 논리적인 게 아니라 미묘하고 감정적인 형태로 존재한다.

차별은 느껴지는 것이다.

느낌은 객관적이지 못하고 틀릴 수도 있지만 당하는 사람에겐 실재적이다.

한국에서 남자로 살면서 여성이 경험하는 차별을 느낄 재간은 없었다.

내가 차별의 대상이 되고서야 비로소 내 처의 페미니즘을 이해할수 있었다''

여성계의 숙원이던 여성부 출범이 눈앞에 다가왔다.

제도적 장치도 필요하지만 보다 중요한 건 실질적인 기회 제공이다.

여성이 사회 각 분야에서 남성과의 진정한 파트너십을 발휘하는,그럼으로써 여성부가 필요없는 날이 빨리 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