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이산상봉] (서울에서) 평양공항 짙은안개 4시간 도착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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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가 또다시 울음바다가 됐다.
50년 분단과 함께 깊은 주름살속에 그리움을 묻고 살아온 남북한의 이산가족들은 "오마니" "오빠" "누나"를 되뇌이며 한맺힌 울음을 터뜨렸다.
생사도 확인 못하고 기다려온 세월을 용광로에 녹여버리듯 상봉 가족들은 뜨거운 통한의 눈물을 쏟아냈다.
30일 석달 보름만에 재개된 2차 남북이산가족상봉은 서울과 평양의 궂은 날씨로 시작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평양 순안공항의 짙은 안개로 인해 남측 대한항공 KE 815편의 출발시간이 3시간 30분이상 지체되면서 우리 비행기는 오후 12시47분에야 김포공항을 출발했다.
이에 따라 북측 남방단은 당초 예정보다 늦은 이날 오후 5시30분에 숙소인 단체상봉장인 센트랄시티에서 50년 쌓인 정한을 나눴다.
.북측 방문단인 김재호(65)씨를 끌어안은 남측의 형 재환(70)씨는 "네가 살아있는지도 모르고 사망신고를 했었구나"하고 울부짖었다.
그는 "사망신고까지 했는데 형제들을 찾겠다고 했으니 내가 염치없고 몹쓸 놈"이라며 못다한 형의 도리를 자탄했다.
김재호씨는 이번에 방남하는 북측 사람중에서 유일하게 재환씨 혼자만의 생사를 확인했다.
그는 "남들은 적어도 셋,많게는 아홉까지 남한 친지의 생사를 확인했는데 나만이 형의 생사를 확인하게 됐다"며 "자유스럽게 만나는 그날이 오면 형님을 곁에서 모시고 살고 싶다"고 말했다.
<>.북측 방문단 리용호(68)씨는 남측의 형제를 모두 만나 기쁨의 눈물을 나눴다.
용호씨는 "살아있으니 보게 된다"며 "이렇게 형제들을 만났으니 죽어도 여한이 없다"며 울먹였다.
이날 용호씨는 형제인 인호(78) 봉호(70) 종호(66) 순호(61) 설호(58)씨를 한꺼번에 만났다.
봉호씨는 "다섯달전 용호를 그리며 돌아가신 어머님만 살아계셨어도 1차 상봉때 만날수 있었을 것"이라며 "1차때 못만나서 실망이 컸었다"고 말했다.
<>.남측 방북단중 9명은 고령과 지병 때문에 휠체어에 의지,바라보는 이를 안타깝게 했지만 정작 이들은 모두 가족상봉의 기대감에 기쁜 표정이었다.
북한에 살고 있는 누나를 만날 예정이라는 신형순(71) 할아버지는 "지난 4월 허리를 다쳐 2번 수술을 했지만 아직 다 낫지않아 진통제를 맞고 떠나게 됐다"며 "한번 더 수술을 해야 하지만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안 될 것 같아 휠체어를 타고 나왔다"고 말했다.
고령으로 기력이 없어 휠체어를 탄 김덕희(89) 할머니도 "52년만에 둘째 딸(67)을 만나게 돼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최고령자인 유두희(99) 할머니도 휠체어에 탄채 "어젯밤에 밤잠을 설쳤다"며 힘든 여정을 마다하지 않았다.
<>.평양 철도관리국 축구선수 출신으로 아내와 자녀를 만날 석만길(85) 할아버지는 "우리 과수원에서 딴 배로 만든 배즙 1박스를 준비했다"며 "남쪽에서 재혼한 아내가 선물을 꾸려줬다"고 자랑했다.
한종은(83) 할아버지는 "고향(평남 강서군) 사람이 북에 남겨두고 온 약혼녀의 생사를 확인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이름과 주소를 적은 쪽지를 건네 받아 꼭 한번 알아볼 참"이라고 말했다.
<>.방북단은 고령자가 많고 부상자가 뜻하지 않게 발생하는 바람에 예정시각보다 출발이 20분 정도 늦어졌다.
마중나온 가족들 30여명은 버스 주변에서 손을 흔들며 환송했고 일부 가족들은 "몸이 불편하신데 공항까지 같이 모시면 안되겠냐"고 문의하기도 했다.
채훈묵(82) 할아버지는 당초 출발시간인 오전 7시를 조금 넘겨 7시10분께 버스를 타려고 서두르다 호텔현관에서 발을 헛디뎌 오른쪽 이마를 바닥에 찧었다.
이 바람에 눈썹부위가 2~3cm 가량 찢어지고 피가 흐르는 상처를 입었으나 인근 서울중앙병원에 신속히 후송돼 상처를 봉합한후 공항으로 합류했다.
한편 방북단 의료진은 "마지막 검진을 위해 식사 시간을 이용해 회진을 했으며 방북이 어려울 만큼 이상이 있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북측 이산가족 방문단이 묵게될 서울 잠실롯데월드 호텔은 이산가족 상봉을 축하하기 위해 무려 7일간의 작업 끝에 1m 높이의 5단 포토 케익을 선보였다.
케익 최상단에는 푸른 색학 두 마리가 황색 둥지를 박차고 날아오르는 모양을 장식해 이산가족들의 장수를 기원했다.
포토케익은 설탕과 전분을 섞어 만든 식용 판넬으로 학과 둥지는 식용색소를 가미한 설탕을 1백57도의 고열로 녹여 만들었다.
/ 특별취재팀
50년 분단과 함께 깊은 주름살속에 그리움을 묻고 살아온 남북한의 이산가족들은 "오마니" "오빠" "누나"를 되뇌이며 한맺힌 울음을 터뜨렸다.
생사도 확인 못하고 기다려온 세월을 용광로에 녹여버리듯 상봉 가족들은 뜨거운 통한의 눈물을 쏟아냈다.
30일 석달 보름만에 재개된 2차 남북이산가족상봉은 서울과 평양의 궂은 날씨로 시작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평양 순안공항의 짙은 안개로 인해 남측 대한항공 KE 815편의 출발시간이 3시간 30분이상 지체되면서 우리 비행기는 오후 12시47분에야 김포공항을 출발했다.
이에 따라 북측 남방단은 당초 예정보다 늦은 이날 오후 5시30분에 숙소인 단체상봉장인 센트랄시티에서 50년 쌓인 정한을 나눴다.
.북측 방문단인 김재호(65)씨를 끌어안은 남측의 형 재환(70)씨는 "네가 살아있는지도 모르고 사망신고를 했었구나"하고 울부짖었다.
그는 "사망신고까지 했는데 형제들을 찾겠다고 했으니 내가 염치없고 몹쓸 놈"이라며 못다한 형의 도리를 자탄했다.
김재호씨는 이번에 방남하는 북측 사람중에서 유일하게 재환씨 혼자만의 생사를 확인했다.
그는 "남들은 적어도 셋,많게는 아홉까지 남한 친지의 생사를 확인했는데 나만이 형의 생사를 확인하게 됐다"며 "자유스럽게 만나는 그날이 오면 형님을 곁에서 모시고 살고 싶다"고 말했다.
<>.북측 방문단 리용호(68)씨는 남측의 형제를 모두 만나 기쁨의 눈물을 나눴다.
용호씨는 "살아있으니 보게 된다"며 "이렇게 형제들을 만났으니 죽어도 여한이 없다"며 울먹였다.
이날 용호씨는 형제인 인호(78) 봉호(70) 종호(66) 순호(61) 설호(58)씨를 한꺼번에 만났다.
봉호씨는 "다섯달전 용호를 그리며 돌아가신 어머님만 살아계셨어도 1차 상봉때 만날수 있었을 것"이라며 "1차때 못만나서 실망이 컸었다"고 말했다.
<>.남측 방북단중 9명은 고령과 지병 때문에 휠체어에 의지,바라보는 이를 안타깝게 했지만 정작 이들은 모두 가족상봉의 기대감에 기쁜 표정이었다.
북한에 살고 있는 누나를 만날 예정이라는 신형순(71) 할아버지는 "지난 4월 허리를 다쳐 2번 수술을 했지만 아직 다 낫지않아 진통제를 맞고 떠나게 됐다"며 "한번 더 수술을 해야 하지만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안 될 것 같아 휠체어를 타고 나왔다"고 말했다.
고령으로 기력이 없어 휠체어를 탄 김덕희(89) 할머니도 "52년만에 둘째 딸(67)을 만나게 돼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최고령자인 유두희(99) 할머니도 휠체어에 탄채 "어젯밤에 밤잠을 설쳤다"며 힘든 여정을 마다하지 않았다.
<>.평양 철도관리국 축구선수 출신으로 아내와 자녀를 만날 석만길(85) 할아버지는 "우리 과수원에서 딴 배로 만든 배즙 1박스를 준비했다"며 "남쪽에서 재혼한 아내가 선물을 꾸려줬다"고 자랑했다.
한종은(83) 할아버지는 "고향(평남 강서군) 사람이 북에 남겨두고 온 약혼녀의 생사를 확인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이름과 주소를 적은 쪽지를 건네 받아 꼭 한번 알아볼 참"이라고 말했다.
<>.방북단은 고령자가 많고 부상자가 뜻하지 않게 발생하는 바람에 예정시각보다 출발이 20분 정도 늦어졌다.
마중나온 가족들 30여명은 버스 주변에서 손을 흔들며 환송했고 일부 가족들은 "몸이 불편하신데 공항까지 같이 모시면 안되겠냐"고 문의하기도 했다.
채훈묵(82) 할아버지는 당초 출발시간인 오전 7시를 조금 넘겨 7시10분께 버스를 타려고 서두르다 호텔현관에서 발을 헛디뎌 오른쪽 이마를 바닥에 찧었다.
이 바람에 눈썹부위가 2~3cm 가량 찢어지고 피가 흐르는 상처를 입었으나 인근 서울중앙병원에 신속히 후송돼 상처를 봉합한후 공항으로 합류했다.
한편 방북단 의료진은 "마지막 검진을 위해 식사 시간을 이용해 회진을 했으며 방북이 어려울 만큼 이상이 있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북측 이산가족 방문단이 묵게될 서울 잠실롯데월드 호텔은 이산가족 상봉을 축하하기 위해 무려 7일간의 작업 끝에 1m 높이의 5단 포토 케익을 선보였다.
케익 최상단에는 푸른 색학 두 마리가 황색 둥지를 박차고 날아오르는 모양을 장식해 이산가족들의 장수를 기원했다.
포토케익은 설탕과 전분을 섞어 만든 식용 판넬으로 학과 둥지는 식용색소를 가미한 설탕을 1백57도의 고열로 녹여 만들었다.
/ 특별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