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이곳 아르헨티나에서는 "이민 35주년 기념비 제막식"이 있었다.

아르헨티나 이민사에 큰 매듭을 지을 이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아르헨티나 주재 한국 대사와 2백50여명의 한국 교민들이 무박 2일의 6천리길 강행군을 펼쳤다.

이 길은 35년전 초대 이민자들이 설레임과 두려움에 찬 꿈을 안고 밤새 달려 온 바로 그 길이다.

1965년 부산항을 뒤로 한지 두달 만에 78명을 태운 이민선이 부에노스 아이레스 항에 도착했다.

영농이민으로 온 한국인들에게 주어진 것은 수도에서 1천1백km 떨어진 라마르케의 황무지 4백ha였다.

파타고니아라고 부르는 이곳은 강한 바람과 돌멩이들이 끝간 데 없는 평원을 휘젓고 다니는 곳이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푸른 땅을 다림질해놓은 듯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 사이로 반듯하게 난 길들은 화가 몬드리안이 이 곳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그의 그림을 빼 닮았다.

한마디로 징하게 넓고 평평한 대평원이다.

졸지에 1백만평의 대지주가 된 한국인에게 덤으로 주어진 것은 추위와 잡초 그리고 독충이었다.

그러나 이민자들은 목젖을 치밀고 올라오는 슬픔과 향수에 굴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황무지와 굳은 악수를 나누었다.

민들레와 댑싸리라는 야생잎새를 무쳐 먹으며 그 황량한 땅에 말뚝을 막고 천막을 세우며 새 삶의 장을 열었다.

매서운 바람과 폭우는 천막을 통째로 날리기도 했다.

사전정보 부족으로 한국에서 가지고 온 연장은 리어카에 삽과 곡괭이뿐이었으니 그 넓은 땅에 묻은 그들의 손톱은 얼마나 많았으리.

포플러 나무를 방풍림으로 심어 바람과 협상을 했고 자주 뒤집히는 천막은 흙벽돌을 직접 구워 온돌방까지 갖춘 집으로 바꾸며 삶을 일구었다.

그들의 개척정신까지 비료로 받은 땅은 정직하게 약속을 지켜주었다.

드디어 그곳에 한국인들이 심은 토마토,사과,고추가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이제 35년의 세월이 흐른 뒤 그 재배 작물은 전량 수출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것은 아르헨티나 땅 깊숙이 심은 한국인의 혼이 주렁주렁 그 열매를 함께 거둔 것이다.

농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한국인 세 사람의 시신이 묻혀있는 공동묘지가 있다.

그 묘비에 붙어있는 손바닥만한 흑백사진,뿌옇게 변한 사진 속의 미소는 이민 초기의 아픈 사연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그 인고의 세월을 밑거름으로 한 오늘의 수확을 그들인들 어찌 기뻐하지 않을까.

아마 지하에서도 조촐한 잔치를 벌일 것이다.

단단하기가 돌멩이같은 케브라초 나무.

천년 넘은 그 나무의 중심 속대에 새긴 이민 기념비는 높이 3.5m,무게 7백kg 이다.

"재 아르헨티나 한인 이민연구회"가 주축이 되어 세웠다.

그윽한 밤색 나무에 "한국 이민 최초 정착지"라는 비문이 금색으로 빛난다.

이제 3만여 한국인들은 검푸른 리오 네그로 강의 속삭임이 들리고 사과꽃잎이 하얗게 내리는 최초의 정착지에 마음의 대들보를 세웠다.

이민 35주년 기념비 제막식이 열리던 날 3만여 교민의 가슴 속에서는 감격의 종소리가 울렸다.

분홍색 한복을 입은 한국학교 어린이 8명은 자갈길 위에 앉아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고 장구도 치고 부채춤도 추었다.

박수소리는 인근에서 온 현지인들로부터 더 크게 울려 나왔다.

남의 땅에서는 뿌리내리는 사람도 힘들지만 받아들이는 사람도 쉽지 않다.

그 사이에 흐르는 사고와 문화의 강을 건너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아직도 적잖은 아르헨티나인들에게 한국인들은 비문화적으로 비쳐지고 있다.

이런 마찰과 오해는 남의 터전에 들어온 이민자들이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과정의 하나다.

하지만 시련과 기회는 동전의 앞뒷면 같은 것.

시련을 새로운 기회의 원동력으로 돌려 써야 할 것이다.

그 원동력의 심지는 땀과 눈물,한국인들의 개척정신이 깃든 라마르께에서 새 불길을 피워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국인의 반듯한 이미지를 세우는 일은 척박한 땅에 정착하는 과정보다 더 길고 먼 길일지도 모른다.

바람을 막기 위해 라마르께 농장에 심었던 미루나무는 어느새 20m도 넘게 자라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이제 이 미루나무의 늠름함을 닮은 "문화의 나무"를 아르헨티나에 심어야 하지 않을까.

이역만리에서 코리안 드림을 이루어낸 한국인들은 이제 현지인들과의 문화 교류를 통해 진정한 세계시민으로 거듭나야 한다.

지구촌 사회에서 우리는 모두 한 식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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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약력=<>이화여대 졸업 <>시집 "외지의 휘파람 소리""카멜레온의 눈물"등 <>주 아르헨티나 대사 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