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통령선거가 극도의 혼돈속에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냉정히 살펴보면 그 터널끝은 상당히 분명해졌다.

이를 잘 아는 양 진영 모두 바둑으로 치면 마지막 집계산을 하는 끝내기 단계에 들어섰다고 볼 수 있다.

그 실마리와 열쇠는 역시 ''수(手)작업 개표''라는 카드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앨 고어 후보는 수작업 개표라는 결정적 카드를 던짐으로써 플로리다주 팜비치 카운티 전역에서 1천9백표를 늘릴 수 있는 기회를 포착했다.

이는 1차 재검표가 끝난 현재 조지 부시가 앞서고 있는 표차인 3백27표(AP통신 비공식집계)보다 훨씬 큰 숫자다.

따라서 여기서 게임이 종료된다면, 플로리다에 배정된 선거인단 25명을 확보할 수 있고 결국 치열한 집내기 바둑의 최후 승자로 백악관에 들어갈수 있다.

하지만 그 대가로 고어는 당초 쥐고있던 몇 가지 중요한 카드를 포기해야 한다.

자기에게 올 표가 혼동을 일으키기 쉬운 나비형투표용지 때문에 팻 뷰캐넌 후보에게 돌아갔다고 주장할 수 있는 입지가 거의 없어져 버리는 것이다.

이미 1차 재검표와 2차 수작업 재검표라는 두장의 중요한 카드를 써버린 마당에 뷰캐넌에게 넘어간 표에 대한 권리까지 주장했다가는 ''한없는 욕심쟁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뷰캐넌에게 넘어간 표에 대한 권리주장과 함께 물려있던 ''재투표 요구'' 카드도 이제는 사용할 수 없는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다.

다급해진 것은 앞서가던 조지 부시후보다.

수작업 재검표를 통해 챙길지도 모를 고어의 1천9백표가 너무 큰 숫자이기 때문이다.

해외 부재자투표에 기대를 걸고는 있지만 이 원군은 그 숫자도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다.

더욱이 고어가 새로 챙긴 표를 누르고 다시 앞서려면 최소한 1천6백표가 더 필요하지만 해외부재자표에서 그만큼 많은 표차를 낼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더욱이 부시는 자기에 대한 지지가 높은 지역에 대한 수작업 재검표 요청이라는 카드도 사용할 수 없는 입장이다.

플로리다주법은 선거이후 72시간안에 이의신청을 해야하는데 이미 그 시한을 넘겨 버린 까닭이다.

따라서 수작업 재검표에 따른 원군을 얻기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 점은 부시의 결정적 패착이지만 그동안 이기고 있는 입장에서 진 사람(고어)의 ''마구잡이식 페이스''에 끌려 다닐수 없었던 것은 결국 부시의 ''운명적 고민''이었다.

이제 부시에게 남은 수단은 수작업재검표에 대한 연방법원의 중지명령이다.

투표용지의 구멍밥(천공밥)이 제대로 떨어지지 않아 무효처리된 표를 유효표로 되돌려 놓지 말라는 판사의 판정을 얻어내는 것이다.

"무효에서 유효로 돌려놓을 수 있는 구멍과 구멍밥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애매모호하다"는 것이 공화당의 주장이다.

"사람은 주관적이지만 기계는 민주·공화를 가릴줄 모른다는 점에서 사람보다 기계를 더 믿을 수 있다"는 점도 부각시키고 있다.

이 청원을 처리하게 된 도널드 미들부룩스 연방판사가 공화당의 손을 들어주면 부시는 대통령이 될수 있다.

반대로 공화당편을 들어주지 않으면 백악관은 고어의 것이 되기 쉽다.

그런 의미에서 미들브룩스 판사가 느끼는 부담은 보통이 아니다.

더욱이 그는 클린턴이 임명한 민주당출신이다.

따라서 시비는 얼마든지 있을수 있다.

부시는 이미 여기에서 질 경우 상위법원의 판단에 의존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지만 선거가 소송으로 먹칠되는 것을 미국민들이 극히 꺼리는 것이 부담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12월 18일의 선거인단 선거다.

그때까지 플로리다분규가 종료되지 않으면 이를 빼고 대통령을 선출한다.

그러면 고어는 더욱 유리하다.

양봉진 워싱턴 특파원 yangbongjin@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