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퇴출기업 명단에 대거 포함된 건설회사 직원들의 경우 업계 전반에 걸친 침체로 새 일자리 잡기도 여의치 않아 더욱 불안하다.
노동계는 근로자들의 생존권을 보호하기 위해 총파업 투쟁도 불사하겠다는 태세다.
이처럼 대기업에서의 구조조정은 그 자체가 무겁고 암울한 뉴스다.
이에 반해 벤처기업에선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물론 다니던 직장에서 잘리는게 즐거운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그렇게 비관할 일도 못 된다는게 벤처기업 사람들의 대체적인 정서다.
새 직장을 상대적으로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면 아예 창업을 할 수도 있다.
벤처기업에서 인원정리 등 구조조정이 비교적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여름이후 서울 테헤란밸리에선 조용한 가운데 엄청난 구조조정이 진행됐다.
벤처투자가 급격히 위축되면서 벤처기업들이 부서 통폐합과 인력감축 등 다운사이징에 돌입한 것.
인터넷 교육업체인 K사는 전체 인원을 20%이상 줄이고 조직도 인터넷과 교육사업본부 등 2개 팀으로 축소 개편했다.
B2B(기업간 전자상거래) 업체인 K사도 올 하반기에 실시키로 한 인력충원 계획을 취소하고 오히려 기존 5개팀을 2개팀으로 줄이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돈줄이 끊긴 벤처캐피털도 예외는 아니다.
홍보와 마케팅 등 지원부서를 통폐합하거나 인원을 축소하는게 벤처캐피탈업계에 유행처럼 퍼지고 있다.
기존 대기업 같았으면 곡(哭)소리가 나도 여러번 났을 법한 인원정리가 벌어지고 있는 테헤란밸리에선 큰 잡음이 들리지 않는다.
최근 직원의 절반이상을 소리도 없이 일사천리로 내보낸 타운뉴스(www.townews.co.kr,대표 유석호)의 예를 보자.
지역정보 사이트를 운영하는 이 회사는 당초 기대와 달리 수익을 제대로 못내자 과잉인력 정리작업에 착수했다.
유석호(33) 사장은 지난 9월 추석연휴 직전 전직원을 소집, 회사상황을 설명하고 연휴 직후 희망 퇴직신청을 받겠다고 발표했다.
연휴의 들뜬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발표였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추석연휴를 마치고 돌아온 직원들은 이심전심으로 뜻을 모아 75명 모두 사표를 썼다.
퇴직 사원의 선별을 사장에게 전적으로 맡긴다는 뜻이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1차로 30명이 회사를 떠났다.
또 10월말엔 10명이 추가 퇴직했다.
이들중엔 팀장급 간부도 다수 포함돼 있었다.
유 사장은 자진 사퇴한 사람을 위해 자기 주식 1만5천주를 내놓았다.
퇴직 직원들은 그것으로 월급의 3개월치 정도씩의 퇴직금을 받았다.
그런데 이 회사를 떠나는 사람들의 표정은 어둡지 않았다.
"마지막 환송연 자리는 평소 회식때와 다를게 없었다. 떠나는 사람이 누구고 남는 사람이 누군지 모를 정도였다"
타운뉴스 홍보팀에 근무했다 벤처기업인 아이월드네트워킹(대표 허진호)으로 자리를 옮긴 박정은 대리의 말이다.
이들이 비교적 밝은 얼굴로 회사를 떠난 이유는 뭘까.
무엇보다 벤처업계의 독특한 고용문화 때문이다.
"원래 벤처기업에 들어온 것부터가 모험이었다. 언제 회사를 떠날지도 모른다는 마음의 준비를 대부분 하고 있다. 여전히 새로 생겨나는 벤처가 많아 일자리 찾기가 어렵지 않다는 점도 한 요인이다"(정향덕 타운뉴스 팀장)
실직이나 전직도 벤처식으로 생각하고 받아들인다는 얘기다.
벤처기업 직원들의 경우 스스로 창업을 할 수 있다는 점도 뻬놓을 수 없는 이유다.
개개인이 나름대로 기술과 노하우를 갖고 있는 전문가들이기 때문에 맘만 먹으면 창업이 가능하다.
타운뉴스에서 나온 직원들 중에도 창업을 한 사람이 적지 않다.
방재근 경영관리팀장과 노경빈 전략기획팀장은 새 벤처기업을 차렸다.
타운뉴스에서 퇴직한 사람중 아직까지 일자리를 못찾은 실업자는 거의 없다는게 회사측 설명이다.
요즘 닷컴기업을 중심으로 한 벤처기업에서도 구조조정 바람이 거세지만 기존 기업과 대조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다.
벤처기업은 구조조정도 벤처답게 하는 셈이다.
차병석 기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