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두푼도 아니고 무려 4백31억5천만원을 대출받으면서 자신의 얼굴은 한번도 노출시킨 적이 없다.
더군다나 자신의 이름으로 된 계좌를 하나도 만들지 않을 정도로 철두철미하게 준비를 한 점도 이씨의 ''실력''을 가늠케 한다.
수사를 맡은 검찰관계자가 혀를 내둘렀을 정도다.
이씨는 ''바지''라고 불리는 고전적인 수법을 이용했다.
주주 대출을 금지하고 있는 규정을 피하기 위해 사례금을 주고 이름을 빌려 대출을 받았다.
대출금은 자신에게 넘기게 했다.
그리고 그 돈을 정현준 사장에게 고리로 빌려주거나 사채업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 검찰에 의해 발견된 차명계좌는 20여개.
명의를 빌려준 이들은 대부분 소규모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다.
검찰 조사 결과 이들은 이름을 빌려주면서 1백만원 정도씩의 ''명의 대여료''를 받았다.
명의 대여자는 주로 이씨의 자금 담당책인 원응숙씨가 동원한 것으로 조사됐다.
원씨는 이씨가 운영하던 사채회사 글로벌파이낸스의 이사를 지내다 지금은 S팩토링의 이사로 일하고 있다.
주로 사채거래를 하던 사람들을 데려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동방금고 12층 자신의 사무실을 거점으로 불법대출을 지휘했다.
다른 직원은 사무실에 얼씬도 못하게 했다.
미국으로 도피한 유조웅 사장만 출입할 수 있었다.
유 사장과 공모해 불법대출을 저질렀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사장-감사-이사 등의 라인을 거쳐야 하는 공식적인 대출과정은 아예 무시했다.
동방금고 노조에 따르면 이름을 빌려줄 사람이 오면 이씨는 자신의 사무실로 데려가 서류를 만들었다.
서류를 내려보내면 실무자들은 형식적으로 점검한 뒤 곧바로 원하는 계좌로 돈을 보냈다.
심지어는 대출을 하고 난 뒤 담보가 오는 경우도 허다했다고 한다.
동방금고를 자신의 ''개인금고''처럼 떡 주무르듯 요리했다는 말이다.
김문권 기자 m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