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중반부터 불기 시작한 "명품 열풍"이 멈추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페라가모 샤넬 에르메스 불가리 티파니 등 소위 명품이라는 별칭이 붙은 패션브랜드들은 경기동향과 상관없이 연일 최고 매출을 올리며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2~3년 전만해도 이들 브랜드의 주 소비자들은 4,50대 상류층 귀부인들이었으나 최근에는 20대 직장여성들까지 그 열병에 전염됐다.

명품 스타일의 옷,명품 분위기의 가방과 신발 등 패션의 키워드는 명품 하나로 통한다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패션 관계자들은 "비싼 외제 브랜드라고 해서 무조건 명품이라고 이름 붙이는 것은 잘못된 일이지만 소비자들이 이미 이들 제품을 명품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 "왜 비싼 값에도 불구하고 톱브랜드 상품을 사려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소비자들을 열광시키는 패션명품들의 공통점으로는 1백년 넘는 오랜 세월 지켜오고 만들어온 좋은 품질과 귀족 이미지,유행을 앞서나가는 디자인 등을 꼽을 수 있다.

또 명품 타이틀을 유지하기 위해 구사하는 그들만의 특별한 마케팅과 홍보기법을 빼놓을 수 없다.

그중 첫째가 브랜드를 함부로 노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TV광고를 하는 명품은 없다.

이탈리아 브랜드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경우 카탈로그도 소량만 만들어 서점에서 판매한다.

몇만부를 찍어 나눠주는 우리의 패션업체와는 다르다.

로고도 되도록 크게 쓰지 않는다.

로고 문양을 찍는 디자인 자체가 유행일 때를 제외하고는 되도록 작게 박거나 안쪽으로 숨긴다.

에르메스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이같은 "안티 스테이터스(Anti-status) 심볼" 전략은 경박하게 과시하기보다는 은근히 부를 자랑하려는 상류층 고객들의 심리를 자극하고 있다.

프라다처럼 인기 있는 연예인에게 자사제품을 입히는 스타 마케팅을 의도적으로 피하는 브랜드도 있다.

대중에게 알려서 많이 파는 것보다 가치를 알고 찾아오는 진짜 고객만 받겠다는 의도다.

"보수와 혁신"의 적절한 조화도 패션 명품을 만드는 비결이다.

명품 반열에 오른 브랜드들은 저마다 역사에 남을만한 제품을 하나씩 보유하고 있는데 그것들 모두가 당시 사람들에게는 깜짝 놀랄 정도로 획기적인 "발명품"이었다.

1912년 샤넬은 파리 캉봉가에 의상실을 열어 여성들의 몸에서 페티코트와 코르셋을 벗기고 남성 속옷 소재로 만든 편안한 옷을 선보였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물자가 부족해지자 페라가모는 비닐종이 낚싯줄 등을 이용해 속이 훤히 보이는 투명구두를 만들었고 보잘것 없었던 짚이나 코르크 등을 굽소재로 사용했다.

이것이 오늘날의 코르크 굽 구두와 플랫폼 슈즈의 시초다.

명품브랜드들은 이처럼 세상사람들의 눈을 크게 뜨게 만든 사건을 일으키는 한편 극히 보수적인 성격도 갖고 있다.

그 예로 샤넬의 C로고와 구치의 더블G로고,루이비통의 LV로고 등은 시대와 유행에 따라 다양하게 변주되면서도 계속 패션쇼 무대에 오르는 것을 들 수 있다.

이같은 보수성은 오랜 시간이 흘러도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동일하게 유지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명품브랜드들은 꾸준한 메세나(Mecenat,기업의 예술후원활동)와 자선활동으로 이미지를 한단계 끌어 올리는 것을 잊지 않고 있다.

에르메스는 예술가를 후원하고 있으며 루이비통은 에이즈퇴치기금 마련에 앞장서고 있다.

또 페라가모는 매년 전세계 불우 어린이를 위한 기금을 모으는 등 자선행사를 펼치고 있다.

설현정 기자 s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