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경제학상 '헤크먼/맥패든 교수'] (내가 본 수상자) 조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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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환 < 서강대 교수 >
맥파든 교수는 물리학을 전공했으면서도 자연과학의 정적(정적)에 가까운 경제학의 대가가 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물리학을 통해 갈고 닦은 수학적 소양과 통계학적 통찰력은 그를 오늘날 계량 경제학의 대가로 만든 밑거름이 됐다.
그는 미네소타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해 우등으로 졸업한뒤 심리학 사회학 인류학 등으로 시각을 넓혀 같은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지만 학자로서의 그의 인생이 처음부터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박사학위를 받은 이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피츠버그 대학의 포스트 닥터 과정에서 2년이란 세월을 보내기도 했다.
피츠버그 대학이 진주를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그의 진가를 알아차린 곳은 캘리포니아의 버클리 대학이었다.
맥파든은 31세의 젊은 나이에 명문 버클리대학의 정교수가 됐다.
나는 그의 버클리대 첫 강의인 "수리 경제학"을 듣는 행운을 잡았다.
이듬해에도 미시경제이론을 들었으니 2년간 그의 밑에서 수학한 셈이다.
그는 성실하고 열성적인 강의로 유명했다.
강의 시간때면 항상 눈이 벌겋게 충열돼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강의 준비로 전날 새벽을 하얗게 샌 탓이었다.
때문에 그의 강의는 간결하고 논리정연한 것으로 명성이 높았다.
당시 강의는 스스로 경제학에 대한 넓은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좋은 수련장이었다.
하지만 수학으로 경제학 이론을 가르치는 비교적 딱딱한 과목이었기 때문에 당시 학생수는 많치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는 15년간 버클리에서 가르친 뒤 동부 명문인 MIT(메사추세츠 공과대학)로 옮겨 통계센터 소장을 역임하고 명강의로 이름을 날렸다.
최근엔 다시 버클리로 옮겼다고 들었다.
맥파든 교수는 꾸준히 노력하는 학자의 대명사다.
이번 노벨상 수상은 그의 경제학에 대한 성실한 노력과 진지한 연구의 당연한 댓가라고 본다.
맥파든 교수는 물리학을 전공했으면서도 자연과학의 정적(정적)에 가까운 경제학의 대가가 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물리학을 통해 갈고 닦은 수학적 소양과 통계학적 통찰력은 그를 오늘날 계량 경제학의 대가로 만든 밑거름이 됐다.
그는 미네소타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해 우등으로 졸업한뒤 심리학 사회학 인류학 등으로 시각을 넓혀 같은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지만 학자로서의 그의 인생이 처음부터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박사학위를 받은 이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피츠버그 대학의 포스트 닥터 과정에서 2년이란 세월을 보내기도 했다.
피츠버그 대학이 진주를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그의 진가를 알아차린 곳은 캘리포니아의 버클리 대학이었다.
맥파든은 31세의 젊은 나이에 명문 버클리대학의 정교수가 됐다.
나는 그의 버클리대 첫 강의인 "수리 경제학"을 듣는 행운을 잡았다.
이듬해에도 미시경제이론을 들었으니 2년간 그의 밑에서 수학한 셈이다.
그는 성실하고 열성적인 강의로 유명했다.
강의 시간때면 항상 눈이 벌겋게 충열돼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강의 준비로 전날 새벽을 하얗게 샌 탓이었다.
때문에 그의 강의는 간결하고 논리정연한 것으로 명성이 높았다.
당시 강의는 스스로 경제학에 대한 넓은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좋은 수련장이었다.
하지만 수학으로 경제학 이론을 가르치는 비교적 딱딱한 과목이었기 때문에 당시 학생수는 많치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는 15년간 버클리에서 가르친 뒤 동부 명문인 MIT(메사추세츠 공과대학)로 옮겨 통계센터 소장을 역임하고 명강의로 이름을 날렸다.
최근엔 다시 버클리로 옮겼다고 들었다.
맥파든 교수는 꾸준히 노력하는 학자의 대명사다.
이번 노벨상 수상은 그의 경제학에 대한 성실한 노력과 진지한 연구의 당연한 댓가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