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에서 1백까지 9는 몇번 들어있을까.

성급한 사람은 9번(9,19…),사려깊은 사람은 19번(…89,90,91…)이라고 말할 것이다.

아르헨티나 소설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셀 수 없이 많다고 말한다.

99와 1백 사이에도 99.99가 끝없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시조인 보르헤스(1899∼1986)는 심안(心眼)으로 0.99의 세계를 탐구한 20세기의 철인(哲人)이다.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장이던 보르헤스는 책을 많이 본 나머지 생애 마지막 30년을 장님으로 보냈다.

빛이 사라진 우주에서 보르헤스는 자연수 너머 정수,유리수 너머 무리수의 세계를 발견했다.

그는 인간 이성이 만들어낸 실수를 부정하고 허수를 긍정함으로써 서양 인문정신의 새 지평을 열었다.

보르헤스의 대표작 ''죽지 않는 인간''은 원고지 80장 안팎의 짧은 소설이다.

''지상에 새로운 것은 없다''는 서문을 달고 있는 이 소설은 불멸을 꿈꾸는 로마 호민관이 불사의 강물을 마시고 2천년 가까이 떠돌지만 치유의 또 다른 강물을 마시고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는 이야기다.

작가는 죽지 않는 인간을 통해 불사의 관념이야말로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불사의 도시는 무서운 것이다.

미지의 사막 한가운데 이 도시가 영원히 존재한다는 것은 과거와 현재를 더럽히는 일이다.

이 도시가 존재하는 한 인간은 행복할 수 없다''

보르헤스는 ''모든 지식은 기억에 불과하다''며 ''종말이 왔을 때 남는 것은 숱한 작가로부터 차용한 언어뿐''이라고 말했다.

도처에 존재하되 하나인 사람,수천년을 살았으되 오늘 이 자리에서 쓰러지는 사람은 보르헤스 자신이며 시간속의 인간이다.

''헤라클레이토스는 같은 강물에 두번 발 담글 수 없다고 했지만 흘러가는 것은 강물뿐이 아니다.

나 또한 쉼없이 흘러간다.

강은 나를 휩쓸고 가지만 내가 그 강이기도 하다.

시간은 나를 태우는 불이다.

하지만 내가 그 불이다.

세상은 불행히도 리얼하고 나는 불행히도-보르헤스다''

윤승아 기자 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