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그로스 < 김&장 법률사무소 국제변호사 lawkim@kimchang.com >

나는 열렬한 민주주의 지지자다.

그러나 그토록 수호하는 민주주의건만,나는 요즘 그 ''함정''에 걸려들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안에서 말이다.

나의 애견(愛犬) ''찰리'' 때문이다.

내겐 그토록 사랑스럽건만 이웃들에게는 찰리가 ''계단에 발자국을 남겨놓고,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시끄럽게 짖어대는 애물단지''다.

물론 개가 사람보다 우대받기도 하는 미국과는 한국이 다르리란 것쯤은 짐작했다.

그러나 요즘 한국에서도 개를 ''음식''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으로 보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고 들었다.

찰리를 한국에 데려오기로 결정한 것도 이런 기대에서였다.

이사온지 처음 몇주동안은 문제가 없는 듯 했다.

그러나 갈등은 곧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찰리와 산책을 하던 아내가 한 이웃의 성난 눈과 마주친지 얼마 안돼 이웃들은 마침내 ''반견(反犬)집회''를 개최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날 아내와 나는 외출중이었다.

애완견을 키우던 한 한국인 이웃은 그날 집회에 ''소환''당해 온갖 비난의 소리를 들어야 했다.

우리 부부가 집을 비웠던 게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그 이웃은 당당한 태도로 "개를 처분하느니 차라리 이 아파트를 떠나겠다"고 말했다.

우리 아파트 전세 계약서를 뒤져봤지만 애완동물 금지조항은 없었다.

법적으로는 아무 하자가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한국인 이웃들과 이렇게 지내려고 1만마일을 날아온 것은 아니다.

무슨 해결책이 없을까.

나는 미국 백악관과 국무부 재임시절의 경험까지 총동원해 머리를 짜냈다.

근본 문제는 이웃들이 찰리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이웃들에게 찰리와 친해질 기회를 만드는 것일테다.

나는 백악관과 국무부 근무시절 수많은 외교 만찬과 칵테일 파티에 참석했다.

거기서 만난 외국인들과 얘기를 주고 받으며 비슷한 문제점에 고민하고 있다는 데 공감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마다 결론은 ''서로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이 훨씬 많다''는 것이었다.

그렇다.

이웃들을 초청해 칵테일 파티를 열자.

그리고 찰리를 ''명예손님''으로 내세우자.

언젠가는 이웃들이 찰리를 다정스레 바라보며 쓰다듬어주겠지.

나는 이웃들이 찰리를 나만큼이나 사랑하는 그런 날이 오리라고 믿는다.

그때쯤 나도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되찾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