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홍상화

황무석이 이미지에게 다가갔다.

"잠시 저쪽에 앉아 얘기 좀 할까"

황무석이 저만치 벤치를 가리켰다.

황무석이 먼저 걸음을 옮기고 이미지가 뒤따랐다.

그들은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임신했다는 얘기 들었어"

황무석이 고개 숙인 이미지에게 나직이 말했다.

"…"

"여하튼 축하해"

이미지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이내 그녀는 손수건을 꺼내 눈으로 가져갔다.

그녀의 어깨가 가늘게 흔들렸다.

"그 얘기 진 회장에게서 들었어"

"…무슨 얘기를요?"

이미지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이정숙 교수가 의식을 회복할 가능성이 있어 진 회장 어머니가 아기를 키우겠다고 했다는 거…"

이미지의 흐느낌이 뚜렷해졌다.

황무석은 문득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이미지가 병원에 온 것이 이정숙과 무슨 관계가 있는 듯했다.

"이정숙 교수 만나러 왔어?"

"…이 교수님 어머니를 만나러 왔어요"

"만났어?"

"아니요.

용기가 나지 않아서 그냥 되돌아가려던 참이에요"

"무슨 말을 하려고?"

"…"

"나한테 털어놔봐.그럼 마음이라도 편해질 테니까.

혹시 내가 도움이 될지도 모르고…"

황무석의 말에 이미지는 머뭇거리다가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내 아이를 내가 키우게 해달라고 부탁하려 했어요.

회장님과 헤어지더라도…"

황무석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떤 여자가 자기가 낳은 아이를 키우고 싶지 않겠는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대부분의 여자는 그런 생각을 할 것이다.

문제는 이미지라는 여자가 그런 희생을 치를 각오가 되어 있느냐는 것이었다.

황무석은 호기심이 생겼다.

진성호가 원하는 것은 이미지의 아이지 결코 이미지라는 여자 자체는 아닐 거라고 황무석은 믿고 있던 터였다.

일이 잘만 진행된다면 진성호의 골칫덩어리를 해결해주는 셈이었다.

"정말 진 회장과 헤어진다고 약속할 수 있어?"

황무석의 말에 이미지는 처음으로 고개를 들고 그를 쳐다보았다.

"그래요.

아이만 빼앗지 않는다면요"

이미지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그녀의 그런 결심이 현실화될지 어떨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그녀의 충혈된 두 눈이 그 순간만큼은 진실임을 내보였다.

"자신있어?"

"그래요.

자신있어요"

이미지가 황무석의 시선을 잡은 채 자신있게 말했다.

"그럼 가능성이 있어.

나하고 같이 이정숙 교수의 어머니를 만나러 가자.

딸 가진 어머니라 의외로 얘기가 쉽게 풀릴 수 있을지도 몰라"

황무석이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벤치에서 일어났다.

이미지도 따라 일어섰다.

그녀의 그런 태도에서는 어떤 결의가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