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가 난 집은 먼저 불부터 완전히 끈 다음에 복구를 해가는 것이 순리이다.

그러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큰 불길을 잡아둔 상태에서 복구작업과 마무리 단계의 진화작업을 병행할 수도 있는 일이다.

외환위기라는 큰 불을 맞았던 우리 경제도 작년부터는 개혁작업과 경제회복작업을 동시에 추진해 왔다.

개혁이나 구조조정이 장기에 걸쳐 심한 고통을 수반하므로 경제가 그 것을 견딜 만한 활력을 갖추게 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러나 불씨가 아직 남아있는 상태에서 새로운 회오리 바람들이 몰아치고 있어 우리 경제는 지금 위기 재연의 위협에 직면해 있다.

경기는 빠른 속도로 식어가고 있다.

2분기의 성장률(전기 대비)은 1.1%여서 연율로 환산해도 4.4% 밖에 안된다.

원유가격의 급등, 원화절상, 임금인상 등의 요인들 때문에 무역수지 흑자폭은 크게 줄어들었다.

돈이 많이 풀렸다지만 금융시장의 불안감과 신용경색 현상은 여전하다.

정국혼란 의료분쟁 금융사고 들도 경제경영환경을 더욱 어렵게 만들어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인데도 개혁론자들은 정책당국이 당초의 개혁안을 그대로 밀고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외국 언론들은 한국정부가 개혁정책을 포기하면 경제위기가 곧 다시 찾아오게 될 것이라고 엄포를 놓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개혁론자들은 원론적인 얘기만 할 뿐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적 여건을 무시하고 있어서 개혁을 순탄하게,그리고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방안은 제대로 내놓지 못하고 있다.

경제가 회복되면서 힘을 얻게된 기득권 세력의 영향력이나 추가적인 개혁작업이 몰고올 성장과 고용면에서의 고통에 대해서도 충분한 배려를 하고 있지 않다.

지금 상황에서 기업개혁을 다시 독려한다면 연쇄도산이 불가피할 것이고 이렇게 되면 그동안 엄청난 공적자금을 들여 쌓아온 금융개혁의 탑이 무너지고 만다는 한국적 현실을 무시하고 있다.

우리가 처한 상황이 개혁과 경제회복, 즉 진화와 복구작업의 병행을 요구한다면 문제해결의 실마리는 금리정책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기업들의 당면과제가 고비용문제인데 노동비용은 당분간 개선되기가 힘들 것이므로 금융비용의 절감쪽에서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하는 것이다.

국내에는 영업을 열심히 하고서도 이자를 낼 만큼 돈을 벌지못하는 기업들이 수없이 많다.

순수한 경상이익을 금융비용으로 나눈 이자보상비율이 작년중 제조업의 경우 평균 1.03에 불과했다.

4분의 1 또는 절반에 가까운 기업들이 엄밀한 의미에서 부실상태에 있었다는 얘기다.

경기가 극히 좋았다는 때가 이렇다면 다가올 경기침체기에는 사정이 더욱 나빠질 것은 자명하다.

금융비용이 높은 것은 기업자신이 빚을 많이 얻어 썼기 때문이므로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지기 보다 기업과 금융의 부실을 동시에 치유해 나가야 할 때다.

현재 기업들이 부담하는 금리수준은 10%내외인데 앞으로 물가변동이 없고 성장률이 5% 또는 그 이하로 떨어진다고 본다면 높은 수준이다.

대출금리가 2 내지 3%포인트 떨어질 수 있다면 우리경제의 선순환체제가 가동될 수 있을 것이다.

기업들은 이익을 내어 부채를 갚기 시작하고 금융부실이 줄어들게 된다.

증권시장도 활기를 띠게 되고 원화절상 압력도 완화될 것이다.

개혁을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다는 얘기다.

최근에는 시장금리도 약세가 되어 장단기 금리격차가 오히려 줄어드는 등 금리인하를 추진할만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이렇게 본다면 저금리야 말로 불도 끄고 복구사업에도 도움이 되는 물의 역할을 한다.

외환위기 직후 소방수들이 쏟아부었던 고금리정책은 물이 아니라 휘발유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체험으로 배웠다.

내일 열릴 금통위에서 금리정책의 방향을 어떻게 설정할지 궁금하다.

<本社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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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약력

<>서울대 경제학과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
<>한국은행 조사역
<>KDI 연구조정실장
<>한화 경제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