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홍상화

진성구의 말을 믿지 않는 FBI 요원들에게 브리프케이스가 바뀌게 된 경위와 무어씨 비서와의 통화 내용을 설명했다.

"무어씨의 전화번화가 뭐요?"

FBI 요원이 물었다.

진성구는 무어씨의 명함이 든 브리프케이스를 이미 보낸 후였고,전화번호는 기억할 수 없었다.

"기억나지 않아요"

진성구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그의 뒤쪽에 있던 FBI 요원이 등뒤로 수갑을 채운 그를 얼른 일으켜 세웠다.

어디 다른 곳으로 데려가려는지 문 쪽으로 팔을 끌었다.

"무어씨는 휴스턴 오일 회사의 수석부사장이오.전화번호를 알 수 있을 거요"

강제로 끌려나가며 진성구가 다급하게 말했다.

진성구를 다시 자리에 앉게 한 후,한 FBI 요원이 안쪽 사무실로 갔다.

그가 곧 나왔다.

"무어씨가 휴스턴 오일 회사의 수석부사장이라는 사실은 확인되었소.그러나 여비서가 외출중이오.연락이 닿는 대로 이쪽으로 전화를 주기로 했소"

FBI 요원은 다시 덧붙였다.

"미스터 진,미안하지만 지금 시카고시 FBI지부 사무실로 가는 수밖에 없소.당신 수트케이스를 폭발물 전문가가 검사할 때까지 그곳에 있을 수밖에 없소"

"그건 안돼요.

나는 오늘 저녁 LA발 한국행 비행기를 타야 하오.그곳에서 내가 꼭 만나야 할 사람이 기다리고 있소"

진성구는 애원하다시피 말했다.

그들의 반응이 여의치 않자,진성구는 ''어떤 여자''라고만 지칭하며 이혜정을 만나야 될 이유를 설명했다.

폭발물 검사도 끝나야 하니 오늘 저녁 비행기 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그들의 냉정한 결론이었다.

"나한테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소.한 여자의 행복이 달려 있다는 말이오"

진성구가 소리를 질렀다.

"미스터 진,이것은 신의 행위(Act of God)로 받아주시오.우리도 어쩔 수 없소"

5년 전에 일어났던 불행한 사건을 고통스럽게 얘기한 진성구는 묵묵히 듣고만 있던 이성수의 눈과 마주쳤다.

"그것이 정말로 신의 행위였을까?"

이성수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신의 행위로 받아들였어.그때는 이혜정의 불행을 막으려고 신이 그런 일을 일으킨 줄 알았지.그러나 이제 와서는 그게 아니었어.신이 이혜정을 불행한 여자로 만들었어.…너는 신이 존재한다고 믿어?"

"신은 존재할 수밖에 없어.무수한 모든 생물이 우연히 생겨났다는 것은 더 믿기 어려우니까"

"그렇다면 신이 혜정을 왜 불행하게 만들었을까?"

"신이 혜정을 덜 불행하게 만들었는지 몰라.그때 너와 여행을 떠났으면 혜정은 더 불행하게 되었을 거야"

"나는 어떻게 하면 되지?"

"이때까지 하던 식으로 계속 사는 거야….목적을 세워 이루면 허무해지고,이루지 못하면 절망하고….결국 인생은 허무와 절망의 연속이야.그게 신을 믿지 않는 모든 사람의 인생이야"

진성구가 그렇게 말한 이성수를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