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에 대한 유럽인들의 발굴조사가 시작된 것은 1900년부터였다.

''중앙아시아 탐험의 아버지''로 불리는 영국의 동양학자 슈타인,독일인 고고학자 그룬베델 르콕,프랑스의 동양학자 펠리오 등이 중앙아시아 전역을 헤집고 다녔다.

이들이 발굴한 수많은 유물들은 지금 대영박물관 뉴델리박물관 베를린민속박물관 파리기메미술관에 각각 소장돼 전시되고 있다.

일본인의 이 지역 발굴도 이들과 거의 때를 같이하고 있다.

런던에 유학중이었던 교토 니시혼간지 (西本願寺)의 사주(寺主) 오타니 고즈이(大谷光瑞)는 1901년부터 14년까지 세차례에 걸쳐 주요유적을 집중 발굴했다.

그가 내세운 탐사의 목적은 대승불교 전래경로를 찾는다는 것이었지만 그 역시 많은 유물을 수집해가지고 돌아왔다.

오타니의 별장(二樂莊)에 수장됐던 이 유물들은 1916년 구하라 후사노스케(久原房之助)에게 넘어갔다.

지금 이 오타니 소장품은 한국의 국립중앙박물관,도쿄 국립박물관,중국 뤼순(旅順)박물관에 나뉘어 소장돼 있다.

조선총독부 박물관이 기증받아 1916년부터 소장해 온 오타니 컬렉션은 60점의 둔황석굴 벽화를 비롯 조각 공예품 등 1천7백여점에 이른다.

중앙아시아 타림분지의 미란 호탄 쿠챠 투르판 둔황 등 주요유적지의 것들이 망라돼 있다.

그중 벽화는 백미로 알려져 있다.

국내외 비난여론에 밀려 86년 한차례 공개하고 도록도 발간한 적은 있으나 줄곧 수장고에 박혀 있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오타니 컬렉션에 대한 학자들의 연구보고서가 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4년여의 현지조사를 끝내고 곧 발간될 모양이다.

2003년 새로 개관될 용산 국립박물관에는 중앙아시아실도 마련될 것이라고 한다.

이제야 공개할 자신이 생긴 것일까.

비록 우리 문화유산은 아니지만 유럽의 경우처럼 직접 약탈해 온 것도 아니다.

독일은 2차대전중 베를린 민속박물관 소장 둔황벽화의 40%가 파괴됐으나 우리는 6·25를 겪으면서도 잘 보존해왔다.

앞으로 신라 고분에서 출토된 중앙아시아 유물연구도 활발해질 것 같다.

무엇보다 세계 둔황학계가 기뻐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