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15일 남북의 이산가족 상봉을 지켜본 많은 사람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그 구구절절한 사연들을 바라보며,50년 동안 응어리졌던 통한의 재회를 보며,분단이 우리 민족 개개인과 가족들에게 남긴 상처를 새삼 확인했다.

해방 이후 많은 한국인들은 고향에서의 안온한 삶을 누리지 못하고 이런 저런 이유로 흩어지고 헤어져 타향에서 삶의 뿌리내리기에 혼신의 힘을 다했다.

작가 김원일이 최근 펴낸 장편소설 ''가족''(문이당)은 월남해 남한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한 가족의 3대에 걸친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소설이다.

월남 1세대에 해당하는 김석현옹은 강인한 생활력으로 서울에서 냉면집을 내어 성공한다.

2세대에 해당하는 김석현옹의 아들 치효는 그 세대들이 대개 그렇듯이 가업을 이어받고 자식들 교육에 안간힘을 쓴다.

문제는 3세대에 해당하는 인물들.

김치효의 네 자녀들은 각각 다른 삶의 무늬를 빚어낸다.

장남은 현실적 기회주의자로 집안을 팽개치고 자신의 출세를 위해 미국으로 건너간다.

차남은 운명에 함몰된 현실 부적응자가 돼 알코올 중독에 마약까지 손을 댄다.

80년대 운동권이었던 딸은 숭고한 정신의 박애주의자로 거듭 태어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셋째아들은 허무주의적 예술가 유형이다.

''가족''은 3세대 네 형제들의 의식과 삶을 추적하면서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점들을 짚어낸다.

그 문제점이란 현란한 속도감에 정신없이 팽팽 돌아가는 한국사회의 천박한 대중문화,유흥비 마련을 위해 부모 집에 강도질까지 마다하지 않는 일부 부유층 자녀들의 심각한 탈도덕성,극단적 이기주의와 황금만능 풍조,어지러운 세태에 편승한 사이비 종말론 등이다.

김원일은 이러한 우리 사회의 문제점들을 몇 명의 주인공들의 도덕적 자기 헌신을 통해 치유해 낸다.

그것은 직접적으로 소외계층 껴안기와 자연친화적 삶에 대한 동경 같은 것으로도 나타나지만 예술이나 별을 사랑하는 마음 같은 간접적이고도 상징적인 장치로도 구현해 낸다.

김원일이 바라보기에 20세기말의 세상은 부도덕하고 여러가지 문제점으로 가득 차 있다.

그래도 우리는 살아야 한다.

어떻게?

그 문제에 대한 오랜 현실적 고민의 결과가 바로 ''가족''이다.

소설 속 김씨 가족의 삶은 바로 이 시대 가족의 일그러진 얼굴이지만 작가는 21세기 행복한 ''가족''에 대한 희망을 멈출 수는 없다.

그것이 소설 ''가족''의 최종적인 의미이다.

문학평론가 하응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