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를 만나 형님의 한을 풀어드렸어야 했는데''''50년 헤어짐이 3박4일로 정리되겠어요''

분단 반세기의 한을 풀기 위해 평양을 다녀온 남쪽의 이산가족들은 한편으로는 아쉬움을 풀었으면서도 가슴에 또다른 멍에를 안고 온 표정이었다.

평양을 다녀온 이찬우(70·인천시 연수구 옥련동)씨는 큰 형님 철우(78)씨를 뵐 면목이 없어 고개를 떨구었다.

''북에 두고온 아들 윤구(58)씨를 대신 만나고 오라''는 형님의 간절한 부탁을 끝내 이룰 수 없었기 때문이다.

철우 태우(73) 찬우 삼형제가 피란을 떠난 것은 지난 50년11월.황해도 연백군이 고향인 이들은 차가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강화도로 향하는 뗏목에 하루건너 한명씩 몸을 실었다.

그후 50년이 흘렀다.

이들 3형제는 모두 대한적십자사에 방북신청을 했지만 찬우씨만 뽑혀 평양을 방문하게 됐다.

형님 가족들까지 만나 소식을 전해 주라는 주문을 받았다.

찬우씨는 그러나 조카 윤구씨는 만나지 못하고 여동생만 상봉했다.

꽃다운 17세였던 여동생 부전(67)씨는 주름살이 깊게 패인 할머니로 나타났다.

북에서 돌아온 찬우씨는 "형님 오래오래 사셔서 아들을 꼭 만나세요"라며 형님을 위로했다.

형제 자매들을 만나고 온 장두현(74·경기 화성군 장안면)씨는 "남에서 가져간 시계 15개와 반지 8개,구두,상추 씨앗 등의 선물을 형제들에게 나눠주고 왔다"며 "해방후 38선을 넘어 형제들과 헤어진 이후 가슴에 한이 맺혔었는데 이번에 소원을 풀었다"고 말했다.

장씨의 손자 형태(12)군은 "할아버지 형제들께서 헤어진 얘기를 들으니 몹시 슬펐다"며 "한 가족이 흩어지는 일이 다시는 없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박관선(70·경기 의정부시 신곡동)씨는 만남의 감격이 채 가시지 않은 얼굴로 꿈속에 그리던 아들과 조카 두명을 만나고 왔다며 기뻐했다.

박씨는 그러나 "누님은 돌아가셨더라"면서 눈물을 훔쳤다.

비록 고향인 황해도에는 가지 못했지만 이별의 아픔은 조금 가셨다고 덧붙였다.

정명희(72·강원도 동해시 천곡동)씨는 "언니와 오빠를 만나러 갔는데 오빠는 이미 저 세상으로 떠났고 언니만 보고 왔다"고 말했다.

정씨는 "언니가 3년내로 통일이 된다며 꼭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다"고 회상했다.

정씨는 평양에 대한 인상과 관련,"북한은 이제까지 듣던것과 매우 다르더라"며 "사람들도 자유스럽고 물질적으로도 부족해하지 않는 표정이었다"고 설명했다.

조만간 이산가족 문제가 상당히 풀릴 것이라는 믿음에 별로 울지 않았다는 임경옥(71·경남 김해시 외동)씨는 "동생들이 그렇게 고생한 것 같지 않아 마음이 노였다"며 "꿈에도 그리던 동생들을 만나보았지만 이렇게 두고오니 가슴이 더 메어진다"고 눈시울을 적셨다.

<특별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