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은 시작의 출발선이다.

시작은 또다른 끝을 향한 발디딤이다.

시간의 흐름에 단절은 없다.

서로 어울려(相補) 변화의 여린 고리를 이어가는 순환의 유장함이 있을 뿐이다.

여름의 끝, 가을의 시작이다.

눅진했던 녹음은 푸르름을 내놓고 또 한차례 화려한 색잔치를 벌일 채비를 하고 있다.

계절은 벌써 마지막 무더위 한고비만을 남겨 놓고 있다.

주왕산(周王山.721m)을 찾았다.

동해를 옆에 끼고 남으로 내리닫던 백두대간의 기운이 청송땅에서 솟구쳐 드러난 산이다.

이 산의 얼굴은 주방천쪽의 외주왕.

이름과 연관된 전설과 기암괴석의 위풍당당함으로 잘 알려져 있다.

경북의 소금강이란 명성에 걸맞는 외모를 자랑한다.

주왕산은 그러면서도 속이 깊다.

한꺼풀 뒤로 아직 손때 묻지 않은 그대로의 자연을 온전히 간직하고 있다.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내주왕 절골쪽이 그렇다.

2000년 여름의 끝자락, 외주왕과 마주하기 앞서 내주왕 절골쪽으로의 발길을 고집한 것은 그 꾸밈없는 자연의 냄새를 맡아 보려는 생각에서였다.

뒤로한 시간을 찬찬히 꼽으며 하릴없이 부산했던 스스로를 추스리고 또 준비하기 위한 휴식공간이 필요한 때문이기도 했다.

절골 인근의 주산지를 먼저 만났다.

주산지는 조선 경종 원년(1721년)에 완공된 크지도 작지도 않은 못(池)이다.

이제까지 아무리 오랜 가뭄에도 물이 말라 바닥을 드러낸 적이 없다고 한다.

주산지 물속에 뿌리내린 떡버드나무 여러 그루의 모습이 괴기스러울 정도의 평온함을 안겨 주었다.

왼편 가로 난 산책로는 짧지만 여유로웠다.

터널을 이룬 녹음이 때마침 뿌린 이슬비를 막아주는 우산역할을 하며 운치를 더해주었다.

건너편 능선에는 "암산에선 곧게 벌떡 선다"는 소나무들의 위세가 등등했다.

연인끼리, 가족끼리 한 차로 달려온 사람들의 표정에서 주름을 볼 수 없었다.

차를 돌려 절골로 향했다.

"자연 그대로입니다. 진짜 산을 아는 사람들만이 찾는 곳이지요"

절골매표소의 김용겸씨.

이름표에 새겨진 국립공원특별사법경찰이란 글씨가 풍기는 분위기와는 달리 사뭇 넉넉했다.

골 안쪽까지 따라온 김씨가 가리키는 자리에는 이 골에만 산다는 둥근잎꿩의비름을 비롯, 바위채송화 솔나리 망개나무 등이 보였다.

골 안쪽은 큰 덩치의 바위와 널찍한 바위들 차지.

그 사이로 투명한 물이 때론 작은 폭포를 이루며 시원하게 흘렀다.

너른 바위에서 자연을 즐기는 사람들의 얘기소리가 반가웠다.

등반객의 편의를 위해 바위를 돌려놓고 바로 세우는 공원관리인들의 땀냄새도 고마웠다.

대문다리~가메봉~내원동~3,2,1폭포로 이어지는 코스를 완주하려던 생각은 접어야 했다.

비가 그치지 않아 기울고 엇갈린 바위투성이의 길이 여간 미끄러운게 아니기 때문이었다.

대신 주방천쪽 정문으로 돌아가 외주왕을 느꼈다.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어 원래 석병산으로 불렀다는 것이 실감났다.

산 전체가 말그대로 하나의 바위덩어리로 이루어졌다.

계곡을 따라 기암들이 늘어서 있다.

주왕굴 연화굴 자하성 망월대 등에서는 산의 이름 마저 바꿔 버린 전설의 인물들을 보는 것 같았다.

중국 진(晉)나라의 주도가 후주천황을 자칭하며 당(唐)나라에 반기를 들었다가 패해 이곳으로 숨어들었는데 결국 신라 마장군의 철퇴를 맞고 운명을 다했다는 것.

이때 흘러넘친 선혈은 봄 계곡 수달래의 붉은 빛으로 나타난다는 전설도 있다.

신라의 왕위다툼에 얽힌 얘기를 전하는 급수대, 한 도사의 공부를 도와준 신선의 푸근한 모습을 한 시루봉 그리고 바위를 깎아낼 정도로 세찬 폭포들도 주왕산행의 남다른 감흥을 한껏 살려주었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