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빨리빨리'' 해치우는 한국인의 조급증이 높이 평가받는 때도 있다.

바로 인터넷에 관해 얘기할 때다.

전문가들은 한국에서 인터넷산업이 급성장하는 원인중 하나로 ''빨리빨리'' 근성을 꼽는다.

조급한 성격 덕에 인터넷산업의 급류를 제대로 탈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최근 잇따라 터진 초대형 해킹사건들은 이런 평가를 되돌아보게 한다.

한 해커는 강릉에 있는 PC방을 거점으로 무려 2백50개 대기업과 공공기관을 침입했다.

그야말로 제집 드나들듯 여기저기 옮겨다니며 정보를 빼냈다는 얘기가 된다.

게다가 50만명에 달하는 인터넷 회원들의 개인정보를 빼내가는 해킹사건도 터져 충격을 더해주고 있다.

인터넷업체의 한 관계자는 "우리가 모래성을 쌓고 있는게 아닌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보안시스템조차 제대로 갖추지 않은채 조급하게 쌓고 있는 한국의 인터넷산업은 바닷물이 밀려오는 순간 일시에 허물어지고 마는 ''모래성'' 신세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사건들처럼 겉으로 드러난 해킹들이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보안전문가들은 신뢰성이 걸린 보안문제의 특성상 대부분의 기업들이 피해를 당하고도 벙어리 냉가슴 앓듯 쉬쉬 하고 있다고 말한다.

지난 3일 열린 ''세계 톱해커 인터넷 보안 2000'' 행사에 참석한 거물급 해커 피터 시플리(34)는 "해킹하고 싶지도 않을 정도로 한국의 보안수준이 형편없다"고 혹평했다.

올해초 미국에서 발생된 야후, e베이 등 유명사이트 연쇄 해킹사건에서 보듯이 보안문제는 인터넷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려 산업기반 자체를 흔들 수 있는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처하는 업계의 자세는 안일하기만 하다.

기업들은 보안시스템을 갖추는데 당장 소요되는 비용을 문제삼고 있다.

하지만 제대로 시스템을 갖추지 않았을 경우 나중에 드는 비용이 더 커질 것이라는 점은 간과하고 있다.

''성수대교''나 ''삼풍백화점'' 붕괴처럼 공들여 쌓은 탑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사건이 반드시 실물공간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송대섭 정보과학부 기자 dss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