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명간 단행될 개각의 명분은 여러가지다.

그러나 가장 보편 타당한 이유를 찾는다면 김대중정부 후반기 내각의 새로운 구성이 아닌가 싶다.

오는 25일이면 김 대통령의 임기 5년 가운데 절반이 지나게 된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이라는 정책이념을 앞세우고 출범한 DJ정부는 그동안 어떤 성과를 거뒀고,무엇이 잘못됐는지,또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지 등에 대한 종합적 평가가 필요한 시점이다.

외환위기의 엄습으로 인한 IMF관리체제라는 비상적인 상황에서 출범한 DJ정부의 전반기는 놀라울만큼 빠른 시일내에 외환위기를 극복한 것 하나만으로도 매우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아야 마땅하다.

그런데도 정부출범 후반기로 접어드는 지금 높은 점수를 매기는데 주저하고 있다.

왜 그런가.

바로 이에 대한 해답을 구하고 대책을 강구하는 것이 새 내각의 선결과제가 아닌가 싶다.

구체적인 정책과제들을 짚어보자면 수없이 많겠지만 크게는 세가지 문제에 대한 반성과 방향 재정립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관치경제의 유혹에서 벗어날 길이 없는지를 자문(自問)해 보는 일이다.

지난 2년반 동안 정부가 내세운 시장경제 논리에 얼마나 충실했다고 보느냐에 대해 긍정적으로 답할 사람은 많지않을 것이다.

IMF위기로 시장기능이 작동되지않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정부의 역할과 기능이 강화될수 밖에 없었다는 해명도 설득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요인은 무리한 목표설정과 성과지향주의적 개혁의 추진방법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예컨대 경제개혁과제 가운데 빅딜이나 부채비율 2백% 달성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논리적 이상에 치우쳐 무리한 목표를 설정해 놓고 이를 달성하려다 보니 자연 부작용이 대두될 것은 뻔한 이치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를 힘으로 또 틀어막으려 했고,그러다보니 정책의 혼선으로 비쳐지고 시장의 불신을 초래하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경제개혁은 법과 제도를 통해 이뤄나가야 한다.

정부입장에서 보면 다소 답답한 측면이 없지않겠지만 우격다짐보다 자생적 질서를 스스로 창출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진정한 개혁임에 분명하다.

개혁의 성과를 단기간에 얻으려는 조급함을 떨쳐버리는 것,이것이 관치유혹에서 벗어나는 첩경이다.

둘째는 그동안 추진해온 4대 경제개혁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와 추진체계의 재점검이다.

솔직히 공공부문과 노사개혁은 한발짝도 앞으로 내딛지 못하고 있는 것과 다를바 없다.

금융과 기업 구조조정은 엄청난 강도로 추진돼 왔지만 막상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내세우기란 쉽지않다.

4대개혁 목표가 상호보완관계에 있음에도 제각각 딴청을 부리고 있는데다 추진우선순위가 뒤바뀌는 경우도 많아 ''힘은 힘대로 들고 얻은 것은 많지않은'' 비효율을 초래한 면이 적지않다.

대다수 국민들이 철저한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는 것이 요즈음의 현실이다.

정부가 이같은 국민들의 열망을 행여 좀더 강도 높은 개입과 대책의 강구로 오해하지 않을지 걱정이다.

경제주체들이 원하는 건 정책의 일관성이다.

더 이상 우리경제가 외국 제도의 실험장이 되어서도 안된다.

새 내각은 새로운 이슈를 제기하기 보다 그동안 추진해온 여러 과제들을 1차적으로 마무리하는데 역점을 두어야 한다.

동시에 종합적인 청사진을 재점검하고 구체적인 목표를 분명히 제시하는 것이 사회 각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는 개혁 피로감을 씻어내는 지름길이다.

셋째는 법질서의 확립과 사회정의 실현을 통한 집단이기주의의 불식이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정치권을 필두로 하는 사회지도층의 의식개혁이 필수적이긴 하지만 원칙을 지키려는 정부의 확고한 의지가 관건이다.

지금 시중의 최대 관심사는 개각이다.

그러나 국민들의 시선이 그 인적구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국정운영 기본틀이 어떻게 변할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새 내각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이라는 DJ노믹스의 출발점으로 되돌아가 정책자세를 가다듬는 것도 원활한 국정운영의 유익한 방법 가운데 하나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