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에서 날아온 생존가족의 소식에 전국의 이산가족들은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반세기를 눈물로 지새웠던 이산가족들은 뜻밖의 소식에 가슴속에 묻어놨던 부모, 형제에 대한 희미한 기억들을 다시 떠올리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빛바랜 사진첩을 챙기면서 벌써부터 상봉의 꿈에 부풀어 있는 모습들이었다.

그러나 방북신청에서도 탈락하고 북에서도 소식을 받지 못한 이산가족들은 헤어진 형제자매를 그리며 또다시 눈물을 삼켰다.

0...북측의 이산가족 방문단에 형 심종만(68.북한과학원 식물발육연구실장)씨가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접한 동생 양만(56.자영업.서울 송파구 방이동)씨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양만씨는 5섯살 때인 지난 50년 전북 임실에서 종만씨와 헤어졌다.

시골 면장으로 일하던 아버지 심길순(50년 작고)씨를 비롯한 가족들을 남겨둔 채 종만씨는 의용군으로 들어갔다.

양만씨는 "형의 소식을 수소문하던 어머니는 형이 꼭 살아있을 것이라며 사망신고도 미루고 있다가 다른 형제들의 진로문제로 결국 형의 사망신고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울먹였다.

0...작년 11월 부산동여중 교장을 끝으로 30여년간의 교직생활을 마친 이강석(64.부산시 연제구 연산9동)씨는 셋째 누나 봉순(66)씨가 북한에 살아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봉순씨는 지난 48년 친척의 소개로 서울에서 간호사로 일하다 전쟁통에 소식이 끊겼다.

누나가 죽은 줄로만 알고 있던 이씨는 "이번 이산가족 교환방문단에 접수조차 하지 않았다"면서 "서울 간 누님이 북한에 살아 계실 줄은 생각조차 못했다"고 말했다.

0...경북 포항시 북구 두호동의 김소백(71)씨는 북한에서 보내온 명단에 동생 영백(67)씨의 이름이 들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 "꿈만 같다"며 기뻐했다.

소백씨는 "5남2녀중 막내인 영백이와 헤어진 것은 50년 8월이었다"고 회고했다.

포항공립보통학교 3학년에 다니던 영백씨는 전쟁이 터지자 포항시내 야산에 숨어 지냈지만 북한군이 부모에게 총을 들이대고 죽인다고 위협, 은신처를 알아낸 뒤 전쟁터로 끌고 갔다.

소백씨는 "북한군에 끌려간 뒤 동생의 소식이 전혀 없어 죽은 줄로만 알았다"면서 감격해했다.

0...경북 안동시 옥야동에 사는 김필화(68)씨는 남편 조민기(65)씨의 생존을 확인하고 "결혼한 지 몇달만에 인민군에게 끌려간 남편의 생사도 모른채 50년간 한을 안고 청상으로 아들과 살아왔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김씨는 "18살에 2살 연하인 남편과 결혼한 지 몇달도 안돼 남편이 인민군에게 끌려갔다"며 "10년전에 돌아가신 시아버지와 1년전에 돌아가신 시어머니도 생전에 그토록 아들을 보고싶어 했는데 지하에서나마 이 소식을 들으면 너무 기뻐하실 것"이라고 울먹였다.

동생 조순기(64)씨는 "형님이 죽은줄 알고 생일인 음력 8월28일에 제사까지 지내왔다"고 말했다.

[한국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