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들의 긴급제언] (3) 이현재 <학술원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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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회 ''총체적 불안'' 해결 방안은... ]
이현재 학술원 회장은 흔들리는 한국사회에 대해 "지도층의 솔선수범"과 "성숙된 시민정신"이라는 처방전을 내렸다.
의료대란과 은행파업을 둘러싼 집단이기주의, 급속한 디지털화로 인한 사회계층 및 세대간 갈등,빈부갈등 등으로 위기에 처한 한국사회는 어떻게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가.
이같은 물음에 대해 이 회장은 사회지도층의 자발적인 실천과 시민정신의 뒷받침을 통해 성숙된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고 방향을 제시했다.
이 회장은 집권 이후 각 부문에서 개혁을 추진해온 현 정권에 대해 그동안의 개혁작업을 안정적으로 마무리지을 것을 주문했다.
그는 "최근 잇따라 벌어진 의료대란과 은행파업은 정부의 개혁드라이브에 대한 각 집단들의 불안감이 집단이기주의로 표출된 것으로 본다"라고 지적하고 "개혁의 타당성에 대해 국민과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 회장은 "벤처"로 대표되는 한국경제의 새로운 경제주역인 젊은 세대들에겐 일부에서 우려하는 것처럼 "거품"이 아닌 충실한 대안으로 성장해 달라고 당부했다.
[ 만난 사람 = 고승철 < 벤처중기부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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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경제위기로 인한 어려움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최근 한국사회에는 새로운 위기가 몰려왔다는 지적입니다.
경제뿐 아니라 사회전반에 걸쳐 여러가지 갈등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의료대란과 은행파업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경제상황이 IMF 관리체제 이전 수준으로 호전되면서 각 집단들이 "제몫 지키기"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추진돼온 사회구조개혁에 대한 집단적인 저항이 표출되는 것이지요.
물론 그들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닙니다.
하지만 사회갈등을 원만하게 조정해줄 체제가 갖춰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서로 양보하지 않으면 사태가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해부터 본격화된 디지털화로 인해 계층간 세대간 갈등이 생겨나고 새로운 빈부갈등이 빚어지고 있어 경제위기 차원을 넘어선 사회위기로까지 번질 가능성이 보여 걱정스럽습니다"
-위기의 원인에 대해 좀더 구체적으로 분석해 주십시오.
"의료계와 금융권에서 벌어진 일들은 위기의 일면을 단적으로 보여준 경우입니다.
그 밑바닥에선 사회구성원 사이의 불신풍조, 급변하는 사회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소외감, 근로의식 저하, 교육환경 붕괴조짐 등과 같은 한국사회를 위협할 수 있는 커다란 위기의 씨앗들이 자라나고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만을 치료하고 만다면 얼마 안가서 더욱 심각한 상황에 몰리게 될 겁니다"
-어떤 대책이 있겠습니까.
"우선 사회를 유지하는 공식적인 수단인 법질서를 바로 세우는 일부터 서둘러야 합니다.
우리사회에는 "법 따로,관행 따로"라는 식의 편의주의적인 생각이 너무 널리 퍼져 있어요.
실제로 요즘 시중에선 법질서가 실종되고 있다는 말이 많습니다.
법질서는 국민을 계도하고 견인해 가는 역할을 합니다.
엄정한 법질서를 확립해서 국민들의 행동에 대해 공정한 판단의 잣대를 제시해야 합니다.
그 다음엔 지도층의 솔선수범과 건전한 시민정신을 통해 사회위기를 해결해 나가야 합니다"
-지도층이 나서야 한다는 것은 해묵은 얘기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역대 정권에서 지도층을 중심으로 한 여러가지 사회운동을 추진해 왔습니다.
새마을운동 사회정화운동 바르게살기운동 등이 그것이지요.
이 운동들이 나름대로 성과를 거두긴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사회 깊숙히 뿌리내리지 못했기 때문에 비슷한 성격의 운동이 이름만 달리해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계속돼온 것입니다.
다시말해 사회적 기풍이 제대로 서지 못했다는 문제의식 때문에 이같은 운동이 끊임없이 시도된 것이지요.
얼마전까지 사회전체를 떠들썩하게 했던 옷로비 사건을 보세요.
사회를 이끌어야할 지도층이 모범이 되지는 못하고 오히려 많은 국민들에게 비리의 주범으로 비쳐졌지요.
지도층은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국민들이 선택하고 뽑아서 그 자리를 맡긴 사람들입니다.
한마디로 법적인 차원을 넘어선 무한책임과 의무를 갖는 것이지요.
지도층에게 이같은 의식이 부족해지면 우리사회의 미래는 불투명해집니다"
-시민정신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권위주의 정권에선 획일성이 사회를 지배했습니다.
그러나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우리사회는 다양화되고 있습니다.
개인의 생각과 사회 여러집단이 다양화될수록 이들의 이해관계를 하나로 묶어 사회전체의 발전을 꾀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이같은 상황에서 건전하고 성숙된 시민정신, 즉 공동체의식이 필요하게 됩니다.
시민정신은 민주주의의 척도인 동시에 우리 사회가 나아갈 길을 알려주는 지표입니다"
-시민정신은 어디서 찾을 수 있습니까.
"시민정신은 한마디로 희생과 양보의 미덕입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애타애자"는 시민정신과 맥을 같이 하는 말입니다.
남을 사랑하기 위해선 자기양보와 희생이 필요합니다.
한발짝만 물러서면 거기서 타협안이 나옵니다.
이는 최근 벌어지고 있는 집단이기주의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여기서 한가지 경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타인의 양보와 희생을 통해 무임승차하는 사람(Free Rider)이 생겨나선 곤란하다는 것이지요.
공짜로 이익을 얻으려 해선 안됩니다.
모든 사회구성원들이 자신이 일한 만큼 얻고 거기서 행복을 찾아야 합니다.
시민정신을 통해 이같은 공정하고 합리적인 분배의 구조를 마련할 때 개인과 사회의 발전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습니다"
-세대간 갈등을 어떻게 보십니까.
"세대간 갈등은 가치관의 차이에서 기인합니다.
이는 한국사회가 농경사회,산업사회에서 정보화사회로 빠르게 접어들면서 더욱 심화되고 있습니다.
해방후 한국사회는 과학기술과 경제발전을 통한 효율성 극대화에 매진해 왔습니다.
삶의 질보다는 생존의 문제가 절실했던 이 시기엔 우선 잘 살고보자는 논리가 지배력을 발휘했습니다.
그러나 효율성의 중시는 인간소외와 같은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경제개발논리에 익숙한 구세대와 달리 산업화 이후의 세대들은 더이상 사회전체를 위해 인간소외와 같은 문제를 포기하지 않으려 합니다.
오히려 이들은 자신만의 여가를 중요시함으로써 자기행복을 추구합니다"
-의학의 발달로 고령화사회가 되는 것도 세대간 갈등의 원인이 될 수 있을 텐데요.
"고령화사회가 가져오는 구세대 부양문제는 세대간 갈등의 또 다른 원인입니다.
앞으로 경제활동인구인 젊은 세대가 부양해야할 비경제활동인구 가운데 하나인 노인인구는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지요.
이 문제는 경제활동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 노인인구에게 적절한 고용기회를 제공함으로써 해결해야 합니다.
정부가 나서고 기업과 사회가 힘을 합쳐 노인인구를 경제활동인구로 다시 끌어들여야 합니다"
-빈부갈등은 어떻습니까.
"빈부갈등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나 존재하는 문제입니다.
하지만 부를 축적하는 것에 대해 정당한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분위기가 뚜렷한 한국사회에선 빈부갈등은 사회적 긴장감을 불러오는 원인입니다.
게다가 정보화사회가 되면서 정보의 소유여부에 따라 빈부갈등이 심화되는 양상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빈부갈등은 모든 국민들에게 교육과 취업의 기회를 공평하게 제공하는데서 해결책을 찾아야 합니다.
정부는 개인이 자기적성에 따라 필요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인프라를 조성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자신의 능력에 맞는 직업을 가질 수 있게 고용기회도 줘야 합니다.
그 다음에 생겨나는 빈부격차는 개인의 노력차이에 따른 것으로 받아들이는 인식이 확산돼야 합니다.
안정되고 성숙된 사회는 빈부격차가 없는 사회가 아니라 합리적인 차이를 인정하는 사회입니다"
-IMF 경제위기와 함께 출범한 현 정부가 벌써 집권기간의 절반을 보냈는데요.
"현 정부의 특징은 한마디로 "개혁정부"입니다.
출범초기부터 공공 기업 금융 노사 등 4대 부문 개혁에 대한 의지를 갖고 관련 정책을 강도높게 추진해 왔습니다.
물론 이같은 개혁작업의 공과에 대해선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개혁은 기본적으로 사회 각 계층의 이해관계가 충돌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특히 기존 사회구조에서 기득권을 확보하고 있는 세력들은 개혁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갖는게 당연합니다.
의료대란과 은행파업은 개혁에 대해 각 집단이 갖고 있는 불안감이 표면에 드러난 사건입니다.
현 정부는 남은 절반의 집권기간동안 개혁작업이 가시적인 성과를 나타낼 수 있도록 안정적인 마무리를 해야 합니다"
-개혁작업의 안정적인 마무리를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합니까.
"남은 기간동안 개혁으로 인한 긴장감을 안정으로 연결시키기 위해선 각 이해관계자들이 갖고 있는 불안감을 해소시켜줄 지혜가 필요합니다.
개혁방향에 대한 사회구성원들의 합의를 끌어낼 수 있도록 의견수렴의 기회를 갖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를 통해 개혁의 타당성에 대해 국민을 설득하는 노력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정부의 노력과 함께 국민들 역시 자신이 속한 집단과 계층의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사회전체를 위해 대승적인 차원에서 필요한 희생과 양보를 할 수 있는 자세가 절실합니다.
개인과 사회가 상생(相生)을 위한 공통가치를 찾아가려는 진지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한국사회의 희망은 어디에 있습니까.
"역시 젊은 세대들에서 우리의 미래를 찾아야 한다고 봅니다.
건전한 시민정신으로 무장한 젊은이들이 이 사회의 주역으로 자라나 구세대들이 이뤄 놓은 성과는 계승하고 잘못은 고쳐 나갈 때만 한국사회의 미래는 밝아질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지난해부터 나라전체를 휩쓸고 있는 벤처열풍은 우리사회에 굉장히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산업사회 세대들이 일궈온 탄탄한 제조업 기반을 가지고 첨단 벤처산업에 뛰어들고 있는 젊은 세대들이야말로 한국경제와 한국사회에 희망의 씨앗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일부에서 걱정하는 것처럼 이같은 열기가 거품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 나의 작은 실천 ]]]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골목길.
저녁무렵이면 쓰레기를 주으며 산책을 하는 노신사가 나타난다.
서울대 총장, 국무총리 등을 역임한 이현재 학술원 회장이 바로 그 노신사다.
이 회장은 음료수 캔, 우유팩, 과자봉지 등으로 어지럽혀진 골목길을 깨끗하게 하는 일에 보람을 느껴 요즘 저녁 식사 약속은 가급적 꺼린다.
1980년대초 대학의 민주화 운동이 한창일 때 그는 서울대 사회대학장, 부총장, 총장 자리에 있었다.
정권과 학생 사이에서 그가 안았던 고뇌의 무게가 얼마나 컸을까.
그는 여러 이해(利害)관계자로부터 두루 신망을 잃지 않는 드문 인물로 꼽힌다.
학자, 공인으로 오랜 세월을 보낸 그가 얻은 소중한 것은 화려한 공직 타이틀보다 제자들로부터 받는 존경심이다.
그는 앞으로도 한국사회가 좀더 성숙한 시민사회로 바뀌는데 열정을 바칠 것을 다짐하고 있다.
정리=장경영 기자 longr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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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력 ]
<> 1929년 생
<>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 서울대 경제학 박사
<> 서울대 교수
<> 미국 피츠버그대 객원교수
<> 서울대 총장
<> 국무총리
<> 정신문화연구원장
<> 학술원 회장(현)
<> 서울대 명예교수(현)
<> 한국경제학회 명예회장(현)
<> 국민대 재단 이사장(현)
<> 호암재단 이사장(현)
<> 중국사회과학원 명예고급연구원(현)
<> 주요저서:경제발전론, 자본시장과 주식분산, 한국경제론, 재정학 등 다수
이현재 학술원 회장은 흔들리는 한국사회에 대해 "지도층의 솔선수범"과 "성숙된 시민정신"이라는 처방전을 내렸다.
의료대란과 은행파업을 둘러싼 집단이기주의, 급속한 디지털화로 인한 사회계층 및 세대간 갈등,빈부갈등 등으로 위기에 처한 한국사회는 어떻게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가.
이같은 물음에 대해 이 회장은 사회지도층의 자발적인 실천과 시민정신의 뒷받침을 통해 성숙된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고 방향을 제시했다.
이 회장은 집권 이후 각 부문에서 개혁을 추진해온 현 정권에 대해 그동안의 개혁작업을 안정적으로 마무리지을 것을 주문했다.
그는 "최근 잇따라 벌어진 의료대란과 은행파업은 정부의 개혁드라이브에 대한 각 집단들의 불안감이 집단이기주의로 표출된 것으로 본다"라고 지적하고 "개혁의 타당성에 대해 국민과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 회장은 "벤처"로 대표되는 한국경제의 새로운 경제주역인 젊은 세대들에겐 일부에서 우려하는 것처럼 "거품"이 아닌 충실한 대안으로 성장해 달라고 당부했다.
[ 만난 사람 = 고승철 < 벤처중기부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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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경제위기로 인한 어려움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최근 한국사회에는 새로운 위기가 몰려왔다는 지적입니다.
경제뿐 아니라 사회전반에 걸쳐 여러가지 갈등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의료대란과 은행파업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경제상황이 IMF 관리체제 이전 수준으로 호전되면서 각 집단들이 "제몫 지키기"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추진돼온 사회구조개혁에 대한 집단적인 저항이 표출되는 것이지요.
물론 그들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닙니다.
하지만 사회갈등을 원만하게 조정해줄 체제가 갖춰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서로 양보하지 않으면 사태가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해부터 본격화된 디지털화로 인해 계층간 세대간 갈등이 생겨나고 새로운 빈부갈등이 빚어지고 있어 경제위기 차원을 넘어선 사회위기로까지 번질 가능성이 보여 걱정스럽습니다"
-위기의 원인에 대해 좀더 구체적으로 분석해 주십시오.
"의료계와 금융권에서 벌어진 일들은 위기의 일면을 단적으로 보여준 경우입니다.
그 밑바닥에선 사회구성원 사이의 불신풍조, 급변하는 사회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소외감, 근로의식 저하, 교육환경 붕괴조짐 등과 같은 한국사회를 위협할 수 있는 커다란 위기의 씨앗들이 자라나고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만을 치료하고 만다면 얼마 안가서 더욱 심각한 상황에 몰리게 될 겁니다"
-어떤 대책이 있겠습니까.
"우선 사회를 유지하는 공식적인 수단인 법질서를 바로 세우는 일부터 서둘러야 합니다.
우리사회에는 "법 따로,관행 따로"라는 식의 편의주의적인 생각이 너무 널리 퍼져 있어요.
실제로 요즘 시중에선 법질서가 실종되고 있다는 말이 많습니다.
법질서는 국민을 계도하고 견인해 가는 역할을 합니다.
엄정한 법질서를 확립해서 국민들의 행동에 대해 공정한 판단의 잣대를 제시해야 합니다.
그 다음엔 지도층의 솔선수범과 건전한 시민정신을 통해 사회위기를 해결해 나가야 합니다"
-지도층이 나서야 한다는 것은 해묵은 얘기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역대 정권에서 지도층을 중심으로 한 여러가지 사회운동을 추진해 왔습니다.
새마을운동 사회정화운동 바르게살기운동 등이 그것이지요.
이 운동들이 나름대로 성과를 거두긴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사회 깊숙히 뿌리내리지 못했기 때문에 비슷한 성격의 운동이 이름만 달리해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계속돼온 것입니다.
다시말해 사회적 기풍이 제대로 서지 못했다는 문제의식 때문에 이같은 운동이 끊임없이 시도된 것이지요.
얼마전까지 사회전체를 떠들썩하게 했던 옷로비 사건을 보세요.
사회를 이끌어야할 지도층이 모범이 되지는 못하고 오히려 많은 국민들에게 비리의 주범으로 비쳐졌지요.
지도층은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국민들이 선택하고 뽑아서 그 자리를 맡긴 사람들입니다.
한마디로 법적인 차원을 넘어선 무한책임과 의무를 갖는 것이지요.
지도층에게 이같은 의식이 부족해지면 우리사회의 미래는 불투명해집니다"
-시민정신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권위주의 정권에선 획일성이 사회를 지배했습니다.
그러나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우리사회는 다양화되고 있습니다.
개인의 생각과 사회 여러집단이 다양화될수록 이들의 이해관계를 하나로 묶어 사회전체의 발전을 꾀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이같은 상황에서 건전하고 성숙된 시민정신, 즉 공동체의식이 필요하게 됩니다.
시민정신은 민주주의의 척도인 동시에 우리 사회가 나아갈 길을 알려주는 지표입니다"
-시민정신은 어디서 찾을 수 있습니까.
"시민정신은 한마디로 희생과 양보의 미덕입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애타애자"는 시민정신과 맥을 같이 하는 말입니다.
남을 사랑하기 위해선 자기양보와 희생이 필요합니다.
한발짝만 물러서면 거기서 타협안이 나옵니다.
이는 최근 벌어지고 있는 집단이기주의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여기서 한가지 경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타인의 양보와 희생을 통해 무임승차하는 사람(Free Rider)이 생겨나선 곤란하다는 것이지요.
공짜로 이익을 얻으려 해선 안됩니다.
모든 사회구성원들이 자신이 일한 만큼 얻고 거기서 행복을 찾아야 합니다.
시민정신을 통해 이같은 공정하고 합리적인 분배의 구조를 마련할 때 개인과 사회의 발전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습니다"
-세대간 갈등을 어떻게 보십니까.
"세대간 갈등은 가치관의 차이에서 기인합니다.
이는 한국사회가 농경사회,산업사회에서 정보화사회로 빠르게 접어들면서 더욱 심화되고 있습니다.
해방후 한국사회는 과학기술과 경제발전을 통한 효율성 극대화에 매진해 왔습니다.
삶의 질보다는 생존의 문제가 절실했던 이 시기엔 우선 잘 살고보자는 논리가 지배력을 발휘했습니다.
그러나 효율성의 중시는 인간소외와 같은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경제개발논리에 익숙한 구세대와 달리 산업화 이후의 세대들은 더이상 사회전체를 위해 인간소외와 같은 문제를 포기하지 않으려 합니다.
오히려 이들은 자신만의 여가를 중요시함으로써 자기행복을 추구합니다"
-의학의 발달로 고령화사회가 되는 것도 세대간 갈등의 원인이 될 수 있을 텐데요.
"고령화사회가 가져오는 구세대 부양문제는 세대간 갈등의 또 다른 원인입니다.
앞으로 경제활동인구인 젊은 세대가 부양해야할 비경제활동인구 가운데 하나인 노인인구는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지요.
이 문제는 경제활동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 노인인구에게 적절한 고용기회를 제공함으로써 해결해야 합니다.
정부가 나서고 기업과 사회가 힘을 합쳐 노인인구를 경제활동인구로 다시 끌어들여야 합니다"
-빈부갈등은 어떻습니까.
"빈부갈등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나 존재하는 문제입니다.
하지만 부를 축적하는 것에 대해 정당한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분위기가 뚜렷한 한국사회에선 빈부갈등은 사회적 긴장감을 불러오는 원인입니다.
게다가 정보화사회가 되면서 정보의 소유여부에 따라 빈부갈등이 심화되는 양상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빈부갈등은 모든 국민들에게 교육과 취업의 기회를 공평하게 제공하는데서 해결책을 찾아야 합니다.
정부는 개인이 자기적성에 따라 필요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인프라를 조성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자신의 능력에 맞는 직업을 가질 수 있게 고용기회도 줘야 합니다.
그 다음에 생겨나는 빈부격차는 개인의 노력차이에 따른 것으로 받아들이는 인식이 확산돼야 합니다.
안정되고 성숙된 사회는 빈부격차가 없는 사회가 아니라 합리적인 차이를 인정하는 사회입니다"
-IMF 경제위기와 함께 출범한 현 정부가 벌써 집권기간의 절반을 보냈는데요.
"현 정부의 특징은 한마디로 "개혁정부"입니다.
출범초기부터 공공 기업 금융 노사 등 4대 부문 개혁에 대한 의지를 갖고 관련 정책을 강도높게 추진해 왔습니다.
물론 이같은 개혁작업의 공과에 대해선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개혁은 기본적으로 사회 각 계층의 이해관계가 충돌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특히 기존 사회구조에서 기득권을 확보하고 있는 세력들은 개혁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갖는게 당연합니다.
의료대란과 은행파업은 개혁에 대해 각 집단이 갖고 있는 불안감이 표면에 드러난 사건입니다.
현 정부는 남은 절반의 집권기간동안 개혁작업이 가시적인 성과를 나타낼 수 있도록 안정적인 마무리를 해야 합니다"
-개혁작업의 안정적인 마무리를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합니까.
"남은 기간동안 개혁으로 인한 긴장감을 안정으로 연결시키기 위해선 각 이해관계자들이 갖고 있는 불안감을 해소시켜줄 지혜가 필요합니다.
개혁방향에 대한 사회구성원들의 합의를 끌어낼 수 있도록 의견수렴의 기회를 갖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를 통해 개혁의 타당성에 대해 국민을 설득하는 노력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정부의 노력과 함께 국민들 역시 자신이 속한 집단과 계층의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사회전체를 위해 대승적인 차원에서 필요한 희생과 양보를 할 수 있는 자세가 절실합니다.
개인과 사회가 상생(相生)을 위한 공통가치를 찾아가려는 진지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한국사회의 희망은 어디에 있습니까.
"역시 젊은 세대들에서 우리의 미래를 찾아야 한다고 봅니다.
건전한 시민정신으로 무장한 젊은이들이 이 사회의 주역으로 자라나 구세대들이 이뤄 놓은 성과는 계승하고 잘못은 고쳐 나갈 때만 한국사회의 미래는 밝아질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지난해부터 나라전체를 휩쓸고 있는 벤처열풍은 우리사회에 굉장히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산업사회 세대들이 일궈온 탄탄한 제조업 기반을 가지고 첨단 벤처산업에 뛰어들고 있는 젊은 세대들이야말로 한국경제와 한국사회에 희망의 씨앗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일부에서 걱정하는 것처럼 이같은 열기가 거품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 나의 작은 실천 ]]]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골목길.
저녁무렵이면 쓰레기를 주으며 산책을 하는 노신사가 나타난다.
서울대 총장, 국무총리 등을 역임한 이현재 학술원 회장이 바로 그 노신사다.
이 회장은 음료수 캔, 우유팩, 과자봉지 등으로 어지럽혀진 골목길을 깨끗하게 하는 일에 보람을 느껴 요즘 저녁 식사 약속은 가급적 꺼린다.
1980년대초 대학의 민주화 운동이 한창일 때 그는 서울대 사회대학장, 부총장, 총장 자리에 있었다.
정권과 학생 사이에서 그가 안았던 고뇌의 무게가 얼마나 컸을까.
그는 여러 이해(利害)관계자로부터 두루 신망을 잃지 않는 드문 인물로 꼽힌다.
학자, 공인으로 오랜 세월을 보낸 그가 얻은 소중한 것은 화려한 공직 타이틀보다 제자들로부터 받는 존경심이다.
그는 앞으로도 한국사회가 좀더 성숙한 시민사회로 바뀌는데 열정을 바칠 것을 다짐하고 있다.
정리=장경영 기자 longr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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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력 ]
<> 1929년 생
<>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 서울대 경제학 박사
<> 서울대 교수
<> 미국 피츠버그대 객원교수
<> 서울대 총장
<> 국무총리
<> 정신문화연구원장
<> 학술원 회장(현)
<> 서울대 명예교수(현)
<> 한국경제학회 명예회장(현)
<> 국민대 재단 이사장(현)
<> 호암재단 이사장(현)
<> 중국사회과학원 명예고급연구원(현)
<> 주요저서:경제발전론, 자본시장과 주식분산, 한국경제론, 재정학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