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눈멀어 결투로 목숨을 잃은 청년은 푸쉬킨 만이 아니다.

현대수학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에바리스테 갈루아(1811~1832)는 하찮은 연애 사건으로 스물 하나에 죽었다.

요절한 독일 극작가 게오르크 뷔히너보다 네 살 적은 나이였다.

수학사의 "스캔들" 에바리스테 갈루아의 일대기를 소재로 한 실화소설 "프랑스 수학자 갈루아"(이끌리오,전2권,각권8천5백원)이 번역됐다.

저자는 호주의 소설가 톰 펫시니스.

작가에 따르면 갈루아는 지행합일의 실천적 지식인이자 시인기질이 다분한 열혈청년이었다.

사실 문학과 수학은 "원수"다.

그러나 광기에 가까운 열정과 무한대의 상상력을 모태로 한다는 점에서 "형제"와 같다.

실제로 로그(log)를 고안한 네이피어는 공상과학소설가였고 행렬을 체계화한 실베스터는 "시창작의 법칙을 썼다.

갈루아의 경우 수학은 그의 종교였다.

태초에는 말씀이 아니라 숫자가 있었다.

유일한 십자가는 "x".

아르키미데스의 포물선 구적법은 최고의 "예술"이다.

갈루아가 보기에 가장 비겁한 사람은 블레즈 파스칼이었다.

뉴튼보다 먼저 미적분을 발견하고도 남았을 선배는 마지막 순간 절대자에 귀의,"약한"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물론 갈루아에게도 신에게 기대고 싶은 유혹의 순간이 있었다.

그러나 갈루아는 수학으로 대표되는 과학을 믿었다.

"과학이 종교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공동체를 세울 것이다"

시대는 혁명으로 치달았고 평등 사회를 주창했던 공화주의자 에바리스테 갈루아는 거리로 나섰다.

이 소설은 고난의 가시밭길을 헤쳐갔던 청년 수학자의 스무살 안팎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갈루아의 요절은 수학계의 큰 손실이 아닐 수 없었으니 그가 창안한 "군"이론은 현대 핵물리학과 양자론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

만약 갈루아의 피가 조금 더 차가왔다면 어찌됐을까.

미해결과제로 남아있는 페르마의 정리는 진작에 풀리지 않았을까.

윤승아 기자 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