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처분 신청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이로인해 신청에서 결정까지 보통 한달이면 종결되던 가처분 사건이 두세달을 넘기기 예사다.

가처분 신청 건수가 급증하고 있는데다 인터넷 소프트웨어 등 전문적 지식을 요하는 분야의 분쟁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법원의 가처분 결정이 지연되면서 부작용도 속출하고 있다.

분초를 다투는 사건에 대한 결정이 늦어지는 바람에 기업들은 적지않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기다리던 중에 사건 자체가 소멸되는 사례까지 생길 정도다.

병원으로 치자면 "응급처치"를 받기 위해 "응급실"에 들렀다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바람에 병세가 악화되거나 사망해 버리는 꼴이다.

법조계에서는 이같은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 전담 재판부의 증원이 시급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법원 관계자는 "국민들의 법 의식이 높아지고 적극적으로 권리를 행사하려는 추세여서 가처분 신청은 늘어날 수 밖에 없다"며 "민생보호 차원에서 인력을 확충해야 한다"고 말했다.

해인법률사무소의 배금자 변호사는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무조건 가처분 신청부터 하는 사례도 많다"며 "급한 사건이 아니라면 가처분 신청을 자제하는 것이 소송 비용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결정지연 이유=가처분 신청 건수 자체가 급증하고 있다.

서울지법 본원의 경우 5월까지 총 4백10건이 접수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3백36건에 비해 22% 늘어난 수치다.

반면 가처분 전담재판부인 민사 50부의 판사는 부장판사를 포함해 3명에 불과하다.

판사 1명이 거의 하루에 한건씩을 처리해야 할 지경이다.

결국 가처분 신청에 대해 한달안에 결정을 내린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게 돼 있다.

전문적이고 복잡한 기술적 사건이 늘어난 것도 이유다.

첨단기술이 담긴 컴퓨터 소프트웨어,전자제품 회로도 등에 대한 사건 결정에는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다.

최근 컴퓨터 소프트웨어 업체인 G사가 L사를 상대로 컴퓨터 프로그램 저작권 침해방지 가처분신청을 내면서 제출한 증거 자료는 A4용지 50장 분량이었다.

그것도 인터넷 홈페이지를 작성하는 데 사용되는 자바(JAVA) 소스코드였다.

<>결정 지연으로 인한 피해=기업과 관련된 사건의 경우 경영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자사직원의 전직금지가처분 신청을 낸 S사는 심리가 한달만에 끝났으나 법원이 그후 한달이 더 가도록 결정을 내리지 않아 끝내 인사발령을 하지 못했다.

지난 5월 제기된 한정치산자 지위확인 가처분 신청은 나중에 자동 각하됐다.

아버지인 A씨가 치매증상을 보이자 자녀들이 상속분쟁을 일으키며 A씨를 한정치산자로 확인해달라는 내용이었다.

A씨의 병세가 심해 분초를 다투는 사건이었지만 한달이 지나도록 심리조차 받지못하다가 결국 A씨는 사망했다.

신청 원인이 사라져 자연 각하되고 말았다.

< 정대인 기자 bigman@hankyu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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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어설명 ]

가처분 신청 긴급을 요하는 사건에 대해 빠른 시간안에 법원의 결정을 구하는 제도다.

정식 재판과 달리 심문없이 서류만으로도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대개 신청을 하는 날부터 2주후에 첫 심문이 열리고 심문이 끝나는 날부터 2주후에 결정이 내려진다.

따라서 복잡한 사안이 아닐 경우 한달이면 법원의 판단이 내려진다.

간단한 사안은 보름만에 결정이 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