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솔빌딩 22층 회의실.

한솔제지 재경 및 홍보팀 관계자들이 모였다.

주가가 창사이래 처음 액면가 이하로 떨어지고 계열사들의 주가도 폭락세를 면치못하자 "비상대책회의"를 연 것이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상태가 이어질지...시장이 원망스럽기만 합니다"

회의를 마치고 나오는 직원들의 푸념속에 뾰족한 방안은 찾아볼 수 없었다.

기껏 새한과 한솔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사실을 공시하거나 신규 투자계획을 발표하겠다는 정도였다.

삼성의 "위성그룹"으로 일컬어지는 신세계와 제일제당도 비슷한 분위기였다.

전날 종합주가지수 700선이 힘없이 무너진데 이어 23일에도 하락세가 이어지자 주요 기업 IR담당자들의 시름도 그만큼 깊어졌다.

숱한 기업설명회에 자사주 매입까지 해봤지만 좀처럼 돌아서지 않는 주가로 어느덧 "패배감"에 젖어버렸다는 한탄도 나온다.

그러나 최근 양상은 단순히 IR담당자 개인의 고민으로 끝나지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다.

주가하락으로 경영의 근간을 흔드는 사례들이 적잖게 나타나고 있다.

다임러크라이슬러 등 해외업체와의 전략적 제휴를 모색하고 있는 현대자동차가 대표적인 경우다.

최근 주가가 애널리스트들이 매기는 적정선에서 한참 떨어진 선에 머물자 경영진들은 상당히 당황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여차하면 자본제휴라도 해야할 판인데 제휴 기준점인 주가는 완전히 바닥권이다.

모 통신업체는 미국 유수회사와의 외자유치 협상이 막바지에 접어들었으나 갑작스런 주가하락으로 사실상 무산될 위기에 놓였다.

주가라는 것은 언젠가 "제자리"를 찾아간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경영현안이 발생했을 때 제값을 받쳐주지 못하면 엄청난 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다.

비단 굴뚝업체뿐만 아니다.

상당수 업체들이 "백약이 무효"인 상태로 경영차질을 빚고 있다.

실적은 좋지만 액면가를 밑도는 업체들은 증자와 외자유치는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그동안 주주중시 경영을 등한시해온 데 따른 "업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라도 진지하게 싯가배당을 검토하겠다는 모회사 관계자 말은 그야말로 만시지탄에 가깝다.

아직 자생력을 갖추지 못한 기업들이 IMF사태후 다시 불어닥치고 있는 국내외 금융불안과 구조조정에 어떻게 대처할지 우려되는 대목이다.

조일훈 산업부 기자 jih@ 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