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의 시성"으로 불렸던 고려말엽의 백운 이규보는 생물평등주의자 생태주의자로도 우리가 자랑할 수 있는 인물이다.

선조들중에 아마 그만큼 자연을 사랑하고 생명의 소중함을 깊이 깨닫고 있었던 사람도 드물 듯싶다.

그는 모기 파리 이 벼룩 개똥벌레 달팽이 개구리 개 고양이 쥐 늑대 등 온갖 벌레와 짐승을 시의 소재로 삼았다.

한 연구에 따르면 그의 시에는 20여종의 벌레나 짐승이 73번에 걸쳐 등장하고 패랭이꽃 금잔화등 식물을 다룬 시는 이보다 훨씬 많아 무려 2백29편이나 된다.

그는 이 모든 작품에서 생물에 대한 깊은 애정을 표현해 놓았다.

백운에게는 만물이 인간을 위해 조물주가 만든 피조물이 아니다.

저절로 생겨난 것일 뿐이다.

모든 생물은 나름대로의 존재의의와 가치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백운은 벌레나 짐승과 똑같이 자연의 일부분인 인간이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지 않고 그대로 따르는 것만이 생태계의 평화를 유지하고 자연속에서 자아를 인식하는 최선의 길이라고 믿고 있다.

서강대 김욱동교수는 최근 이처럼 생물평등주의자였던 백운의 시를 분석한뒤 그를 "한국의 성 프란치스코"라고 부르기도 했다.

삼라만상을 형제자매처럼 대했던 성 프란치스코는 서양에서 생태학자의 수호신으로 추앙받는 가톨릭 성인이다.

생명운동을 펴오고 있는 토지문화재단(이사장 박경리)이 오는 22~23일 원주에서 "시인과 환경"을 주제로 한 대토론회를 갖는다는 소식이다(한경 4월17일자 27면).

유전자지도가 완성되고 마음만 먹으면 생명복제까지 가능해진 요즘 세상에 심각한 생명의 위기를 전달할 시인들이 해야 할 몫을 다짐하는 자리다.

그동안 써왔던 환경생태시를 스스로 반성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11세부터 74세로 죽을 때까지 63년동안 시를 써온 백운은 처음에는 자연이 좋아 시를 썼지만 결국 시라는 틀에 묶이고마는 자신의 처지를 "시마"에 걸렸다고 통탄하고 한때 3백여편의 시를 불태워버리기도 했다.

인간중심주의에 빠지지 않았던 대문호 백운의 이런 겸허한 자세를 되새기게 하는 뜻깊은 모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