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홍상화

장소에 어울리지 않은,좀처럼 보기 힘든 고물차를 탄 사람을 보고 황무석은 깜짝 놀랐다.

최형식이 운전석에 앉아 있고 권혁배 의원이 운전석 옆에 타고 있었다.

권혁배 의원이 아마 최형식의 차를 고의로 타고 온 듯했다.

권혁배의 머리회전에 황무석은 감탄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권혁배의 외모는 평소와 전혀 달랐고 다른 정치인들과는 완연히 구별이 되었다.

머리는 빗질을 제대로 안해 헝클어져 있었고 어디서 구했는지 본래 입어야 할 사이즈보다 두 사이즈나 큰 것 같은 싸구려 기성복을 걸치고 있었다.

구두도 마찬가지였다.

오랫동안 닦지 않은 상태였다.

정치인으로 보이기보다 초라한 월부 책장사로 오인할 정도였다.

권 의원의 옆구리에는 누런 서류봉투가 들려 있었다.

권 의원이 그곳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 사이 차를 주차하고 그곳에 온 최형식에게 황무석이 다가갔다.

"형식아,많이 바쁘구나" 황무석이 손을 내밀며 말했다.

"아저씨,여긴 어쩐 일이세요?" 최형식이 황무석의 손을 두 손으로 잡으며 허리를 수그렸다.

"너하고 급히 의논할 일이 있어서 왔어"

"아저씨, 아주 급한 일이에요?"

"응,조금..." 최형식이 방명록에 서명하는 권혁배에게 시선을 보냈다.

권 의원을 혼자 두고 현장을 뜨기가 곤란한 모양이었다.

황무석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시간을 다투는 일은 아니야.저곳 다방에서 기다릴게" 길 건너에 있는 다방을 가리키며 황무석이 말했다.

"한 시간은 걸릴 텐데요"

"걱정 마" 황무석이 최형식의 어깨를 다독거려주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길을 건너 다방문을 열고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황무석은 주스 한 잔을 시키고 신문을 들어 경제면을 찾았다.

"OECD 존 스톤 사무총장 한국 외환위기 없을 것"이라는 그 날짜 경제면 톱기사와 경제전망 기사에 "내년 수출주도로 경기회복...연말께 저점통과"라는 타이틀이 눈에 띄었다.

그 옆으로 강 부총리가 며칠 후 기아처리 결정을 최종적으로 대통령에게 보고할 예정이라는 기사도 함께 실려 있었다.

황무석은 신문을 내려놓으며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제 저녁 아들 정태가 한 말이 상기되었기 때문이었다.

교수직을 내팽개치고 폴란드에 가겠다는 아들의 결정을 무슨 짓을 하더라도 바꿔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번듯한 아파트를 아들 이름으로 살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그러면 아들의 마음이 변하리라고 황무석은 자신했다.

황무석은 손목 시계를 보았다.

시낭송회가 시작된 지 벌써 20분 가량이 지났다.

그는 다방에서 기다리기가 무료하여 시낭송회장으로 다시 가보기로 했다.

시낭송은 들으나마나 아무 소용없는 것이겠지만 싸구려 다방에 앉아 있으려니 못생긴 마담이 보내는 눈길도 싫었고 다방내의 분위기도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듯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