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 마당] (중기 이야기) '북녘 고향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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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마다 고요히 꿈길을 밟고 와서/머리맡에 찬물을 쏴 퍼붓고는/그만 가슴을 디디면서 멀리 사라지는/북청 물장수..."
함경남도 북청.
동쪽은 대덕산,북쪽은 개마고원에서 갈려나온 차일봉 등 높은 산들이 3면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평야지대다.
함경도 지방에서는 드물게 넓은 들을 갖고 있어 식량을 자급자족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수량이 제법 풍부한 남대천은 마을을 감아돈 뒤 유유히 동해로 빠져나간다.
자녀교육에 대한 열정이 유달리 강해 대학교수를 많이 배출한 고장이기도 하다.
서울에서 공부하는 자식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아버지도 함께 상경해 물지게를 진다.
비탈길을 오르내리며 번 돈으로 학비를 댄다.
고향에 남은 어머니가 나머지 자녀들을 기르는 동안.
강성모 린나이코리아 회장은 소풍을 앞둔 소년처럼 가슴이 설렌다.
인민학교를 졸업하던 광복 이듬해에 가족과 함께 산줄기를 타고 남한으로 내려온 지 54년.
고향인 북청의 흙냄새를 다시 맡아볼 희망이 생길 줄이야.
내달에 평양에 도착하면 북한측을 졸라 반드시 가볼 작정이다.
멱을 감던 개울은 어떻게 변했는지,코흘리개 친구들은 아직 살아있는지...
공장도 이왕이면 고향땅에 지을 생각이다.
남북정상회담 발표이후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실향 기업인이 한둘이 아니다.
고향 어귀에 성큼 다가선 것 같아서다.
같은 북청 출신인 김승무 대영포장 회장이나 해주 태생의 박용진 이디 사장,개성이 고향인 단사천 한국제지 회장과 우상기 신도리코 회장,조영승 삼성문화인쇄 사장도 마찬가지.
안유수 에이스침대 회장은 다른 기업인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고향인 사리원을 벌써 몇차례 방문했고 공장터까지 봐뒀기 때문.
대지 1만평 건평 3천평에 5백만달러를 투자해 올해안에 공장을 지을 계획이다.
안 회장 역시 1.4후퇴라는 급박한 상황을 맞아 가족과 헤어진 채 홀로 내려왔다.
며칠 뒤 다시 만나자는 약속이 부모와 영원한 이별이 됐다.
강산이 다섯번 변했지만 더욱 간절해지는 게 고향생각이다.
북한땅이 보이는 중국 투먼에서 눈물 흘리길 여러차례.
공을 들인 끝에 방북 기회를 얻어 주름투성이로 변한 누나를 부둥켜 안을 수 있었다.
봉분조차 제대로 없던 부모 묘소를 양지바른 곳으로 옮기고.
고향을 자유롭게 찾을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인가.
복숭아꽃과 아기 진달래가 활짝 핀 봄날 어릴 적 뛰어놀던 뒷동산에 올라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을 목청껏 부를 수 있는 날이 온다면.
돈벌이가 잘 되지 않은들 어떠리.
힘닿는 대로 고향땅에 투자하고 돼지잡아 잔치 벌이며 어깨춤추고 싶은 게 실향기업인들의 마음인 듯하다.
김낙훈 기자 nhk@ked.co.kr
함경남도 북청.
동쪽은 대덕산,북쪽은 개마고원에서 갈려나온 차일봉 등 높은 산들이 3면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평야지대다.
함경도 지방에서는 드물게 넓은 들을 갖고 있어 식량을 자급자족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수량이 제법 풍부한 남대천은 마을을 감아돈 뒤 유유히 동해로 빠져나간다.
자녀교육에 대한 열정이 유달리 강해 대학교수를 많이 배출한 고장이기도 하다.
서울에서 공부하는 자식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아버지도 함께 상경해 물지게를 진다.
비탈길을 오르내리며 번 돈으로 학비를 댄다.
고향에 남은 어머니가 나머지 자녀들을 기르는 동안.
강성모 린나이코리아 회장은 소풍을 앞둔 소년처럼 가슴이 설렌다.
인민학교를 졸업하던 광복 이듬해에 가족과 함께 산줄기를 타고 남한으로 내려온 지 54년.
고향인 북청의 흙냄새를 다시 맡아볼 희망이 생길 줄이야.
내달에 평양에 도착하면 북한측을 졸라 반드시 가볼 작정이다.
멱을 감던 개울은 어떻게 변했는지,코흘리개 친구들은 아직 살아있는지...
공장도 이왕이면 고향땅에 지을 생각이다.
남북정상회담 발표이후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실향 기업인이 한둘이 아니다.
고향 어귀에 성큼 다가선 것 같아서다.
같은 북청 출신인 김승무 대영포장 회장이나 해주 태생의 박용진 이디 사장,개성이 고향인 단사천 한국제지 회장과 우상기 신도리코 회장,조영승 삼성문화인쇄 사장도 마찬가지.
안유수 에이스침대 회장은 다른 기업인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고향인 사리원을 벌써 몇차례 방문했고 공장터까지 봐뒀기 때문.
대지 1만평 건평 3천평에 5백만달러를 투자해 올해안에 공장을 지을 계획이다.
안 회장 역시 1.4후퇴라는 급박한 상황을 맞아 가족과 헤어진 채 홀로 내려왔다.
며칠 뒤 다시 만나자는 약속이 부모와 영원한 이별이 됐다.
강산이 다섯번 변했지만 더욱 간절해지는 게 고향생각이다.
북한땅이 보이는 중국 투먼에서 눈물 흘리길 여러차례.
공을 들인 끝에 방북 기회를 얻어 주름투성이로 변한 누나를 부둥켜 안을 수 있었다.
봉분조차 제대로 없던 부모 묘소를 양지바른 곳으로 옮기고.
고향을 자유롭게 찾을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인가.
복숭아꽃과 아기 진달래가 활짝 핀 봄날 어릴 적 뛰어놀던 뒷동산에 올라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을 목청껏 부를 수 있는 날이 온다면.
돈벌이가 잘 되지 않은들 어떠리.
힘닿는 대로 고향땅에 투자하고 돼지잡아 잔치 벌이며 어깨춤추고 싶은 게 실향기업인들의 마음인 듯하다.
김낙훈 기자 nhk@k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