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시인 김규동(75)씨는 반세기를 객지에서 보내고 있는 나그네다.

그는 그래도 아직 북에 두고 온 어머니와 고향을 잊지 못하고 산다.

"꿈에 네가 왔더라/스물 세살때 훌쩍 떠난 네가/마흔 일곱살 나그네 되어/네가 왔더라/살아 생전에 만나라도 보았으면/허구한 날 근심만 하던 네가 왔더라..."

꿈속에서라도 그리운 어머니를 만나 무릎에 머리를 묻고 엉엉 울고만 싶은 심정을 벌써 30여년 전 "북에서 온 어머님 편지"라는 시속에 그는 눈물겹게 그려 놓았다.

노시인의 고향은 함북 회령에서도 산속으로 60리나 더 들어가 옛 6진터에 자리잡은 행영인데 백두산에서 1백50리 떨어져 있는 두만강가의 국경마을이다.

종성에서 눈덮인 백두산 관모봉을 바라보며 학교에 오가던 일과 두만강에서 썰매를 타고 수영하던 일을 그는 지금도 어제 일처럼 기억하고 있다.

48년 한사코 말리는 어머님과 누님 둘,그리고 동생을 남겨 둔 채 "서울가서 3년만 있다 오겠다"고 훌쩍 떠나 온 것이 벌써 52년전 옛 얘기가 됐다.

"솔개 한 마리/빈 하늘을 돌거든/차가운 흙속에서라도/어여삐 웃어주세요"

그가 뒤에 쓴 "어머님 전상서"에서는 이미 돌아가셨을 어머니를 솔개가 되어서라도 날아가 만나고 싶은 심정이 그대로 묻어난다.

노시인의 마음속에 앙금처럼 가라앉은 조국분단의 응어리는 한 때는 큰 분노로 변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그는 그 분노를 승화시켜 통일염원이 담긴 시를 쓴다.

그리고 두만강가에 가서 한바탕 목놓아 울어보는 것이 마지막 소원이다.

남북정상회담 소식으로 나라가 온통 들뜬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

1천만 이산가족에게 이처럼 희망적인 소식은 다시 없을 게다.

분단을 직접 체험한 이산세대만도 1백23만여명이고 그중 김규동시인처럼 60세이상의 고령자도 69만명에 이른다.

이들은 이미 고향의 꿈을 꾸고 있을지도 모른다.

"남북회담/아득한 고향 소식이 들릴듯 말듯/언제나 서럽기만 한 남북회담"

노시인이 과거 "남북회담"에 실망해 쓴 시처럼 이번에는 또다시 실향민들을 실망시켜서는 안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