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 '김대진의 베토벤협주곡' .. 하루에 5곡 全曲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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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김대진과 지휘자 장윤성.서울예고와 서울음대를 다닌 1년 터울의 선후배간이다.
국내 피아노계와 지휘계를 이끌고 있는 중견 음악인이기도 하다.
이들이 작년 5월 쇼팽 피아노협주곡 전곡(2곡)에 이어 지난 2일에는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전곡(5곡)연주에 함께 도전했다.
하루에 5곡을 모두 연주하는 다소 무리한 시도였지만 서로의 마음을 읽는 협연으로 관객을 감동시킨 연주회였다.
1,2,4번을 연주한 1부 연주는 화창한 봄볕 만큼이나 빛을 발했다.
오후 3시에 시작한 탓에 저녁 연주회에 비해 관객이나 연주자나 집중력이 떨어질 것이란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오히려 피아노 소리는 더욱 맑고 청아하게 울렸고 장윤성의 손끝에 이끌린 프라임필의 연주도 곡을 더해갈수록 안정감을 찾아나갔다.
김대진의 연주는 1번 1악장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관현악의 도입에 이어 나온 독주 피아노 파트에서 그는 "띠릭 띠릭"하는 제2주제 마지막 마디 장식음을 맛깔나게 변주했다.
밝고 윤기넘치는 속주로 오케스트라를 리드해가며 경쾌함을 더했다.
특히 2부 첫 곡인 3번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김대진식 카덴차를 만들어내는 듯 했다.
원래 남성적이고 힘이 넘치는 곡이지만 악마적이기까지한 타건과 손놀림,화려한 장식음 연주는 마치 신들린 베토벤을 연상시켰다.
김대진이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피아니스트는 메레이 페라히아.
풍부한 시정으로 곡을 풀어헤쳐 관객에게 전혀 새로운 음악을 선보이는 거장이다.
김대진도 음표의 끝자락을 놓는 듯 잡아당기고 강력한 타건과 쾌속 연주 뒤에 극도로 절제된 표현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5곡을 하루에 연주하는 무리수는 마지막 5번 "황제"에서 드러나고 말았다.
정작 하이라이트인 5번에서 김대진,장윤성,프라임필 단원들은 모두 기진맥진해 버렸고 청소년 교향악단보다 더 못한 협주로 관객들을 실망시켰다.
바이올린 주자중 한 사람은 피아노 독주파트에서 잠시 쉬는 동안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었고 관파트는 아예 소리를 내지 못했다.
2부 공연만 보러 온 관객들에겐 이해를 구할래야 구할 수 없는 연주였다.
국내 음악계가 활성화되는 모티브를 제공한다는 좋은 의도도 마지막까지 연주의 질이 보장될 때 의미있는 일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 장규호 기자 seinit@ked.co.kr >
국내 피아노계와 지휘계를 이끌고 있는 중견 음악인이기도 하다.
이들이 작년 5월 쇼팽 피아노협주곡 전곡(2곡)에 이어 지난 2일에는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전곡(5곡)연주에 함께 도전했다.
하루에 5곡을 모두 연주하는 다소 무리한 시도였지만 서로의 마음을 읽는 협연으로 관객을 감동시킨 연주회였다.
1,2,4번을 연주한 1부 연주는 화창한 봄볕 만큼이나 빛을 발했다.
오후 3시에 시작한 탓에 저녁 연주회에 비해 관객이나 연주자나 집중력이 떨어질 것이란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오히려 피아노 소리는 더욱 맑고 청아하게 울렸고 장윤성의 손끝에 이끌린 프라임필의 연주도 곡을 더해갈수록 안정감을 찾아나갔다.
김대진의 연주는 1번 1악장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관현악의 도입에 이어 나온 독주 피아노 파트에서 그는 "띠릭 띠릭"하는 제2주제 마지막 마디 장식음을 맛깔나게 변주했다.
밝고 윤기넘치는 속주로 오케스트라를 리드해가며 경쾌함을 더했다.
특히 2부 첫 곡인 3번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김대진식 카덴차를 만들어내는 듯 했다.
원래 남성적이고 힘이 넘치는 곡이지만 악마적이기까지한 타건과 손놀림,화려한 장식음 연주는 마치 신들린 베토벤을 연상시켰다.
김대진이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피아니스트는 메레이 페라히아.
풍부한 시정으로 곡을 풀어헤쳐 관객에게 전혀 새로운 음악을 선보이는 거장이다.
김대진도 음표의 끝자락을 놓는 듯 잡아당기고 강력한 타건과 쾌속 연주 뒤에 극도로 절제된 표현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5곡을 하루에 연주하는 무리수는 마지막 5번 "황제"에서 드러나고 말았다.
정작 하이라이트인 5번에서 김대진,장윤성,프라임필 단원들은 모두 기진맥진해 버렸고 청소년 교향악단보다 더 못한 협주로 관객들을 실망시켰다.
바이올린 주자중 한 사람은 피아노 독주파트에서 잠시 쉬는 동안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었고 관파트는 아예 소리를 내지 못했다.
2부 공연만 보러 온 관객들에겐 이해를 구할래야 구할 수 없는 연주였다.
국내 음악계가 활성화되는 모티브를 제공한다는 좋은 의도도 마지막까지 연주의 질이 보장될 때 의미있는 일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 장규호 기자 seinit@ked.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