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최고의 명문 모스크바대학에도 벤처바람이 불고 있다.

전통과 위엄을 자랑하는 웅장한 유럽식 캠퍼스 건물너머, 마치 건설공사현장처럼 컨테이너박스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이곳이 러시아 벤처의 꿈이 영글어가고 있는 모스크바대학 과학단지(MSU;Moscow State University Science Park)다.

모스크바 대학총장이 과학단지 이사회의 의장을 맡고 있고 사무국 주식 60%를 모스크바대학이 갖고 있는 만큼 모스크바대학 직영 과학단지인 셈이다.

MSU과학단지는 정보과학혁명이 전세계를 휩쓸기 시작한 무렵인 지난 91년 문을 열었다.

러시아어로 된 인터넷 검색엔진을 처음 개발한 아가마(Agama)등 현재 40여개의 유망벤처기업이 입주해있다.

입주가능한 업종은 세계적으로 가장 활발히 움직이는 하이테크분야로 국한된다.

즉 정보통신,생명공학,의학,환경보호장비,화학,소프트웨어개발 등이 주류다.

과학단지 사무국의 업무는 크게 세가지.

즉 <>빌딩,비서,안전장비 등 입주와 관련된 각종 사무서비스 <>마케팅,전시회개최,기술적 지원 등 각종 컨설팅 <>유망한 업체와 자본을 연결시켜주는 금융지원 등이다.

그러나 이 과학단지의 가장 큰 잇점은 두말할 나위없이 담장 너머에 모스크바대학이란 싱크탱크가 있다는 사실이다.

2백45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모스크바대학은 8천6백명의 교수들과 생명공학연구소,레이저관련 연구센터,1백여개의 실험실 등을 갖추고 있다.

탄탄한 원천기술을 갖춘 이들 인력이 모두 과학단지의 잠재적 가용자원들이다.

실제로 대학연구소 소속 현직 교수와 학생들은 벤처기업의 프로젝트에 직접 참가,기술을 제공하고 벤처기업은 이 연구소에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 이 과학단지의 기본 연구패턴이다.

러시아에 5천여개 기업을 고객으로 확보하고 있는 컴퓨터프로그램 개발 벤처기업인 가란트(Garant)의 고르데프 총괄이사는 "직원의 90%가 모스크바대학 졸업생으로 물리학 사이버네틱스 등을 전공한 연구원들"이라며 "대학측과는 언제든지 선후배,친구들처럼 대화하고 협력할 수 있다는 점이 굉장히 큰 잇점"이라고 강조했다.

이밖에 업무연계성이 높은 기업들이 함께 모여 있어 기술과 마케팅정보를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시너지효과도 과학단지가 갖고 있는 무시할 수 없는 장점이다.

과학단지 역시 이들 업종의 발전속도 못지 않게 재빠르게 변하고 있다.

입주업체 사장의 평균나이가 30세 전후라는 점만 보더라도 이 단지가 얼마나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지 알 수 있다.

MSU과학단지의 지원업무를 사실상 총괄하는 모프세시안 사무국장 역시 27세에 불과한 새파란 청년이다.

모프세시안 사무국장은 "과학단지는 이제 정상 궤도에 올라 한창 활발하게 움직이는 단계"라며 "노키아 히타치 등 외국기업과 러시아내 벤처기업들 2백개 이상이 입주신청을 해놓고 있지만 이들 중 업종,잠재력,상업화가능성 등 3가지 기준을 엄격히 적용해 선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기업도 이 조건에 맞으면 언제든지 입주할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발틱해를 사이에 두고 서방국가들과 바짝 붙어있는 상트 페테르스부르크의 벤처열풍도 모스크바에 못지 않다.

이런 변화는 모스크바보다 한발 앞서 첨단산업에 뛰어든 현지 벤처기업들은 물론 가장 관료적일 것같은 러시아공무원들의 태도에서도 확연히 감지될 정도다.

상트 페테르스부르크는 시정부가 직접 나서 외국투자자들을 모아 민관 파트너십이란 투자협력기관을 만들었다.

수입관세를 감면해주고 중소기업에 정부가 신용을 보증해주는 한편 비즈니스를 지원하는 기관도 만들었다.

상트 페테르스부르크시 해외협력국 마카로프 국장은 유엔개발기구와 영국 맨체스터 컨설팅사에서 근무한 경력을 가졌다.

시장경제적 감각을 몸에 익히고 있는지라 기업지원에 누구보다 적극적이다.

마카로프 국장은 "국방관련 산업들을 첨단산업으로 개조하는 작업에 주정부가 앞장서고 있다"며 "외국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기 위해서는 이들 기업이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재빨리 파악해 최대한 반영하는 것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푸틴이 정식으로 집권하면 자유시장경제체제가 위협받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이 국장은 "푸틴이 크레믈린으로 가기 전에 바로 여기 상트 페테레스부르크의 부시장이었다"며 "푸틴도 부시장 시절 벤처기업의 육성에 적극적이었고 그 결과 이 도시가 러시아전체에서 가장 벤처기업이 활성화됐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벤처열풍은 푸틴의 대통령당선으로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모스크바=김광현 기자 kkh@k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