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내보내기 다시는 없어야"..워크아웃 조기졸업 '한국컴퓨터'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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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훈 사장이 털어놓는 재기 뒷얘기 ]
"어둡고 긴 터널을 빠져온 기분입니다.
물론 국제통화기금(IMF)한파로 인한 경기 위축이 난관에 빠지게 된 직접적 원인이고 회생하게 된 것도 경기 호전 덕이지만 우리 직원들이 뼈를 깎는 아픔을 참아내지 않았다면 회복하는데 훨씬 긴 시간이 걸렸을 겁니다.
이번 기회에 회사 체질을 강화하게 된 것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디지털 시대의 선도 기업이 되도록 힘쓰겠습니다."
지난 3월 8일 당초 예정보다 1년9개월 빠르게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일정을 마친 한국컴퓨터.
이 회사의 이정훈(47)사장은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등 돌리지 않은 고객들이 회사 회생의 일등 공신 중 하나"라고 거듭 감사의 뜻을 밝혔다.
한국컴퓨터는 금융기관에 필요한 전산 시스템 개발과 판매,중대형 컴퓨터 판매,공중용 현금인출기(CD)설치와 관리를 주로 해온 국내 대표적인 금융권 전산 전문업체다.
1974년 창업 이후 순조롭게 사업을 확장해온 이 업체가 어려움에 빠진 것은 1997년 말 IMF 한파가 시작됐을 때.IMF 한파로 금융권이 가장 먼저 타격을 입자 이들을 주 고객으로 사업하는 한국컴퓨터가 직접 영향을 받게 됐다.
금융권의 전산 관련 신규 투자가 꽁꽁 얼어붙은 것은 물론 이미 계약한 업체마저 계획을 취소했기 때문.
당시 매출의 37% 가까이 차지하던 중대형 컴퓨터 판매사업도 문제였다.
한국컴퓨터는 미국 컴팩사의 국내 유통업체로서 컴퓨터를 판매해 왔는데 당시 하루가 무섭게 올라가는 환율로 대규모 환차손을 입었다.
판매를 해도 영업 마진은 "0"에 가까운 형편이었다.
대규모 차입금도 문제였다.
워크아웃 직후 한국컴퓨터의 차입금은 1천82억원.
자금 조달 당시 금리는 14~15%였지만 IMF 한파 이후 32%까지 상승했다.
게다가 금융기관은 생존 차원에서 대출금을 회수했다.
특히 해외전환사채 보유 금융기관이 만기를 1년 앞둔 98년 풋 옵션을 행사,1백50억원 이상의 환차손이 생겼다.
1994~1997년에 벌인 대규모 확장과 과도한 투자도 문제였다.
이정훈 사장은 1998년 말 한국컴퓨터가 금융기관들과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 약정(MOU)을 맺은 최악의 상황에 대표이사가 됐다.
그는 사장이 된 다음 날부터 직원을 줄이는 구조조정(2차)안과 계열사.주식.부동산 매각 계획을 검토해야 했다.
워크아웃 당시 9백55명이던 직원은 현재 6백80명이 됐다.
9개이던 계열사는 한컴기술지원 한네트 한컴전자등 3개사만 남기고 매각과 통폐합 등으로 대폭 정리했다.
당시 마포사옥과 케이블TV 마포방송 사옥을 포함,지난 1999년 말까지 모두 2백80억원 어치의 자산을 매각했다.
올들어서는 서울방송 주식 2백60억원 어치를 처분,워크아웃 직후 1천82억원이던 차입금이 5백20억원(2월말 기준)으로 줄었다.
98년말 9백1%이던 부채비율은 1백68%(1999년말)로 줄었다.
이로써 "부채 2백% 이하 달성 포함 경영여건이 호전되면 워크아웃 졸업"이라는 규정을 1년 7개월만에 만족시킨 결과 한국컴퓨터는 "경영 정상화를 통한 워크아웃 졸업 첫 사례"라는 영예로운 타이틀을 얻게 됐다.
워크아웃 과정을 조기에 마친 기업은 한창화학이 있지만 이 곳은 해외 매각을 통해 벗어난 경우였다.
이 사장은 지난 시간을 돌이키면서 "앞으로 사람 내보내는 일은 절대로 하고 싶지 않다"는 말로 그간의 어려움을 축약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간 직원들이 대부분 잘 돼있다는 것.
한국컴퓨터는 1999년 현재의 신대방동 사옥으로 이전하면서 분사,퇴사한 옛 동료들에게 새 사옥의 일부를 무료로 빌려주고 1년간 용역 사업도 줬다.
당시 이 얘기가 언론에 보도되면서 노동부에서 "분사 우수 사례"로 표창을 주겠다고 제의받기도 했다.
현재 분사업체 4개 가운데 2개 업체는 코스닥 등록을 앞두고 있다.
한국컴퓨터는 유능한 직원의 이탈을 막기 위해 과장급 이상 직원중 일부에게 스톡 옵션도 줬다.
임원 수를 절반(현재 8명)으로 줄이고 전체 임직원이 상여금을 반납하기도 했다.
이정훈 사장은 경영을 맡으면서 직원들에게 <>투명 경영 <>핵심역량 강화 <>인터넷사업 강화 등 3가지를 크게 강조했다고 말했다.
첫째 투명 경영.
기업이 어려워졌을 때 기존 고객을 잃지 않으려면 직원들이 전보다 훨씬 정성을 담은 서비스를 해야 하는데 그럴 수 있으려면 경영진이 투명한 경영으로 직원에게 믿음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핵심역량 강화.
특히 하이테크 분야에서 제한된 자본으로 사업하려면 일부 경쟁력 없는 분야는 포기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세번째 인터넷 사업은 이 시대 절대절명의 과제.
한국컴퓨터는 한네트 CD기 사업을 인터넷과 연결해 인터넷을 통한 입장권 판매 사업을 강화할 계획이다.
지난 2월 초에는 은행대출을 중개하는 한네트(www.hannet.net)사이트도 열었다.
인터넷 데이터센터(IDC)를 열어 중소 벤처와 협력해 인터넷을 통한 애플리케이션 공급(ASP) 사업도 시작했다.
한국컴퓨터는 이를 기반으로 중소 벤처와 협력을 강화,다양한 인터넷 사업 모델을 개발할 계획이다.
이정훈 사장은 광주일고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했으며 연세대 대학원(전산학.경영학)과 서울대 최고경영자과정을 마쳤다.
1983년 한국컴퓨터 입사 후 17년간 연구소와 기획실 주요 업무를 거쳤다.
일이 생기면 직원을 부르기 보다 직접 직원 자리로 찾아가는 등 격식을 크게 따지지 않는 편.
사내외에서 "사장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 글=조정애 기자 jcho@ ked.co.kr >
"어둡고 긴 터널을 빠져온 기분입니다.
물론 국제통화기금(IMF)한파로 인한 경기 위축이 난관에 빠지게 된 직접적 원인이고 회생하게 된 것도 경기 호전 덕이지만 우리 직원들이 뼈를 깎는 아픔을 참아내지 않았다면 회복하는데 훨씬 긴 시간이 걸렸을 겁니다.
이번 기회에 회사 체질을 강화하게 된 것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디지털 시대의 선도 기업이 되도록 힘쓰겠습니다."
지난 3월 8일 당초 예정보다 1년9개월 빠르게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일정을 마친 한국컴퓨터.
이 회사의 이정훈(47)사장은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등 돌리지 않은 고객들이 회사 회생의 일등 공신 중 하나"라고 거듭 감사의 뜻을 밝혔다.
한국컴퓨터는 금융기관에 필요한 전산 시스템 개발과 판매,중대형 컴퓨터 판매,공중용 현금인출기(CD)설치와 관리를 주로 해온 국내 대표적인 금융권 전산 전문업체다.
1974년 창업 이후 순조롭게 사업을 확장해온 이 업체가 어려움에 빠진 것은 1997년 말 IMF 한파가 시작됐을 때.IMF 한파로 금융권이 가장 먼저 타격을 입자 이들을 주 고객으로 사업하는 한국컴퓨터가 직접 영향을 받게 됐다.
금융권의 전산 관련 신규 투자가 꽁꽁 얼어붙은 것은 물론 이미 계약한 업체마저 계획을 취소했기 때문.
당시 매출의 37% 가까이 차지하던 중대형 컴퓨터 판매사업도 문제였다.
한국컴퓨터는 미국 컴팩사의 국내 유통업체로서 컴퓨터를 판매해 왔는데 당시 하루가 무섭게 올라가는 환율로 대규모 환차손을 입었다.
판매를 해도 영업 마진은 "0"에 가까운 형편이었다.
대규모 차입금도 문제였다.
워크아웃 직후 한국컴퓨터의 차입금은 1천82억원.
자금 조달 당시 금리는 14~15%였지만 IMF 한파 이후 32%까지 상승했다.
게다가 금융기관은 생존 차원에서 대출금을 회수했다.
특히 해외전환사채 보유 금융기관이 만기를 1년 앞둔 98년 풋 옵션을 행사,1백50억원 이상의 환차손이 생겼다.
1994~1997년에 벌인 대규모 확장과 과도한 투자도 문제였다.
이정훈 사장은 1998년 말 한국컴퓨터가 금융기관들과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 약정(MOU)을 맺은 최악의 상황에 대표이사가 됐다.
그는 사장이 된 다음 날부터 직원을 줄이는 구조조정(2차)안과 계열사.주식.부동산 매각 계획을 검토해야 했다.
워크아웃 당시 9백55명이던 직원은 현재 6백80명이 됐다.
9개이던 계열사는 한컴기술지원 한네트 한컴전자등 3개사만 남기고 매각과 통폐합 등으로 대폭 정리했다.
당시 마포사옥과 케이블TV 마포방송 사옥을 포함,지난 1999년 말까지 모두 2백80억원 어치의 자산을 매각했다.
올들어서는 서울방송 주식 2백60억원 어치를 처분,워크아웃 직후 1천82억원이던 차입금이 5백20억원(2월말 기준)으로 줄었다.
98년말 9백1%이던 부채비율은 1백68%(1999년말)로 줄었다.
이로써 "부채 2백% 이하 달성 포함 경영여건이 호전되면 워크아웃 졸업"이라는 규정을 1년 7개월만에 만족시킨 결과 한국컴퓨터는 "경영 정상화를 통한 워크아웃 졸업 첫 사례"라는 영예로운 타이틀을 얻게 됐다.
워크아웃 과정을 조기에 마친 기업은 한창화학이 있지만 이 곳은 해외 매각을 통해 벗어난 경우였다.
이 사장은 지난 시간을 돌이키면서 "앞으로 사람 내보내는 일은 절대로 하고 싶지 않다"는 말로 그간의 어려움을 축약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간 직원들이 대부분 잘 돼있다는 것.
한국컴퓨터는 1999년 현재의 신대방동 사옥으로 이전하면서 분사,퇴사한 옛 동료들에게 새 사옥의 일부를 무료로 빌려주고 1년간 용역 사업도 줬다.
당시 이 얘기가 언론에 보도되면서 노동부에서 "분사 우수 사례"로 표창을 주겠다고 제의받기도 했다.
현재 분사업체 4개 가운데 2개 업체는 코스닥 등록을 앞두고 있다.
한국컴퓨터는 유능한 직원의 이탈을 막기 위해 과장급 이상 직원중 일부에게 스톡 옵션도 줬다.
임원 수를 절반(현재 8명)으로 줄이고 전체 임직원이 상여금을 반납하기도 했다.
이정훈 사장은 경영을 맡으면서 직원들에게 <>투명 경영 <>핵심역량 강화 <>인터넷사업 강화 등 3가지를 크게 강조했다고 말했다.
첫째 투명 경영.
기업이 어려워졌을 때 기존 고객을 잃지 않으려면 직원들이 전보다 훨씬 정성을 담은 서비스를 해야 하는데 그럴 수 있으려면 경영진이 투명한 경영으로 직원에게 믿음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핵심역량 강화.
특히 하이테크 분야에서 제한된 자본으로 사업하려면 일부 경쟁력 없는 분야는 포기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세번째 인터넷 사업은 이 시대 절대절명의 과제.
한국컴퓨터는 한네트 CD기 사업을 인터넷과 연결해 인터넷을 통한 입장권 판매 사업을 강화할 계획이다.
지난 2월 초에는 은행대출을 중개하는 한네트(www.hannet.net)사이트도 열었다.
인터넷 데이터센터(IDC)를 열어 중소 벤처와 협력해 인터넷을 통한 애플리케이션 공급(ASP) 사업도 시작했다.
한국컴퓨터는 이를 기반으로 중소 벤처와 협력을 강화,다양한 인터넷 사업 모델을 개발할 계획이다.
이정훈 사장은 광주일고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했으며 연세대 대학원(전산학.경영학)과 서울대 최고경영자과정을 마쳤다.
1983년 한국컴퓨터 입사 후 17년간 연구소와 기획실 주요 업무를 거쳤다.
일이 생기면 직원을 부르기 보다 직접 직원 자리로 찾아가는 등 격식을 크게 따지지 않는 편.
사내외에서 "사장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 글=조정애 기자 jcho@ ked.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