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난 도일의 소설에 나오는 명탐정 셜록 홈즈에게는 마이크로프트
( Microft Holmes )라는 형님이 있었다.

그는 탐정으로서의 자질 면에서는 아우보다도 뛰어난 사람이었다.

두뇌와 추리력이 더 좋았고 섬세함과 세련됨에 있어서도 앞서 갔으며 행동도
보다 민첩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탐정으로 나서려는 뜻이 없었기 때문에 소설에서는
엑스트라에 그쳤고 명탐정으로서의 모든 영예는 셜록이 독차지하게 된다.

미국의 경제평론가 데이비드 워시가 들려준 이 얘기가 총선을 앞둔 지금
시점에서 다시 생각나는 것은 인물부족을 탄식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우리의 정치현실 때문이다.

때묻은 정치인들은 주위의 비판적 여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유리한 고지를
점거해가며 당선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반면에, 리더십과 경험을 갖추고
인품이 고고한 인사들 중에는 정계진출에 뜻이 없어 자질을 썩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정치판을 시장으로 보아 경제원리로 풀어본다면 이것은 공급쪽에 문제가
많다는 얘기가 된다.

수요자인 유권자들이 아무리 좋은 제품을 고르고 싶어도 시장에 나와있는
많은 물건들이 불량품이고 우량품은 나오기를 꺼려하게끔 시장이 조성돼
있다는 것이다.

한때는 군사정부의 독점시장이 형성돼 많은 배급품들이 시장에 강요된 적도
있었다.

당시에는 유권자들 또한 족쇄에 채여 있었으므로 선택의 폭은 훨씬 제한돼
있었다.

80년대 후반 이후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소비자들의 자유도 신장됐고 선택의
폭도 다소 넓어지기는 했지만 3김체제라는 과점시장이 오랫동안 지배하다보니
정치시장에 나도는 상품들 중에는 여전히 흠집이 많거나 썩은 사과들이
많았다.

이번 선거에서는 시민단체들의 압력을 등에 업고 젊고 새로운 후보들도
시장에 많이 나오겠지만 경험이나 경력면에서 검증을 거치지 않은 풋사과들
인지라 소비자들이 선택을 망설일 가능성이 크다.

정치시장이 제대로 돌아가게 하자면 우량품들이 뒷전에 머물지 않고 시장에
공급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

경제학에서 공급문제를 다룰 때는 장기와 단기로 나누어 해결 방안을
모색하곤 한다.

이것을 원용해 본다면 정치시장의 장기적인 발전과 유권자들의 궁극적인
만족을 위해서는 교육제도를 개혁해 정치 엘리트들을 양성함으로써 우량품
공급능력을 확충해 나가야 한다는 주장을 펼 수 있을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숫자가 적더라도 숨어있는 우량품들이 시장에 나타나는 데
장애가 되는 요인들을 제거해 주어야 할 것이다.

진흙탕 같은 시장판을 청결하게 해주고 특히 패거리 정치와 금권선거가
힘을 못쓰게 해주어야 할 것이다.

경쟁을 제한하고 기득권을 보호하며 부패의 온상이 되기도 하는 밀실정치는
청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우량품의 뛰어남이 소비자들에게 제대로 식별될 수 있도록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돼야 하겠다.

즉 시장에 나온 상품에 대해서는 상세하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소비자가 올바르게 선택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의원 후보자의 경력,재산상태는 물론이고 본인과 가족들의 군경력, 전과여부
납세실적, 국회 발언 및 표결 기록 등 의정활동 내용도 구체적으로 명시되고
공개돼야 할 것이다.

경제원리 또는 시장원리를 가지고 정치현실을 볼 때 얻게되는 한가지 이점은
그것이 정치인들이나 관련 단체들의 가면을 벗겨주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시장주의 경제학은 인간의 본성 중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측면, 즉 이기심에
초점을 맞추어 구축된 학문이다.

이 경제학의 기본원리는 "사람들은 인센티브에 반응한다"는 말로 압축될 수
있다.

거창하게 이상이나 도덕률만을 강조하다 쇠퇴해진 사회주의 경제학과는
달리 이 경제학은 현실과 실천을 중시한다.

미사여구의 슬로건보다는 배후의 의도를 캐어보거나 행동으로 증명해 줄
것을 요구한다.

정치인들이 "신성한 국방의무"라든가 "신성한 납세의무" 또는 "구국의
결단" 운운할 때 경제원리는 이것들을 결코 액면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들이 혹시 남만 부추겨서 "신성한" 짐들을 잔뜩 지워놓고 자신들은 뒤로
숨어있지는 않은지 따져보게 한다.

군대를 피해가고 세금을 피해간 사람들이라면 국회도 피해가야 한다는 점을
유권자들에게 시사해 주는 역할을 한다.

경제원리는 시민단체들에 대해서도 그 진실성을 묻게 된다.

정의나 공익을 앞세우는 단체들이 활동자금은 어떻게 조달하며 지도자나
참가자들의 이기심과 이타심은 어떻게 나누어지고 표현되는가 하는 점들이
명확하게 드러나야 한다고 요구한다.

지도자가 정계와 시민단체를 왔다갔다 한다거나 정부로부터 직접 간접의
지원을 받는 기관이라면 정치문제에 관한 한 그 단체의 공신력은 그만큼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3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