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씨의 소설은 늘상 평론가들사이에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소멸하는 존재의 적요로운 운명을 단정하게 형상화한다"(문학평론가
남진우)는 찬사가 있는가 하면 "슬픔의 포즈로 일관된 멜로물"(문학평론가
고미숙)이라는 비판도 적지않게 받았다.

지난해는 급기야 표절시비로 비화했다.

문학평론가 박철화씨는 그의 장편 "기차는 7시에 떠나네"가 프랑스 작가
파트릭 모디아노를, 중편 "작별인사"가 일본 작가 마루야마 겐지를 각각
본떴다고 주장했다.

문제의 중편 "작별인사"등이 실린 창작집 "딸기밭(문학동네, 9천원)이
이번주 출간된다.

문체의 미학적 측면에서는 절찬을 받았지만 소녀 취향의 퇴행정서를 담고
있다는 비판에서는 자유롭지 못했던 신씨가 어떤 평가를 받을지 주목된다.

신씨의 새 소설집을 지배하는 것은 상실의 감정이다.

작가는 딸을 잃은 부부, 아내를 빼앗긴 남자, 동생을 떠나보낸 언니에게
"그가 모르는 장소"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한다.

"외딴 방"을 거쳐 "현실의 집"을 마련한 신씨는 여전히 "그는 언제 오느냐"
고 묻는다.

"내 소설이 아름다웠다면 내가 아름답지 않아서이고, 내 소설이 불온했다면
내가 불온하지 못해서"라는 작가의 고백도 존재의 결락이 문학의 뿌리임을
암시한다.

표제작 "딸기밭"은 금지된 것에 겁없이 달려드는 젊은 여성이 생의 불가능성
을 깨달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여성적인 근친애를 상징하는 공간인 딸기밭.

여자는 단지 아버지와 똑같은 고무신을 신었다는 이유만으로 한 남자를
사랑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딸기밭에서의 동성애 이후 영원히 남자를 잃어버린다.

유일한 생존법은 망각일 터이다.

"무엇인가를 잊기에 우리 삶이 너무 짧지"않다면 말이다.

신씨는 작가 후기에서 "사랑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나 뜻대로 되지 않고,
영원히 사랑하려고 마음먹으나 그 또한 뜻대로 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며
"그 뜻대로 되지 않음이 이번 소설집을 낳는 힘이 됐다" 고 밝혔다.

< 윤승아 기자 ah@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2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