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신촌.

자정이 가까운 늦은 시간이다.

하지만 요란한 테크노 음악은 거리를 뒤흔든다.

DDR이다.

흥겨운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사람들.

교복입은 학생에서 넥타이를 맨 직장인까지 정신없이 몰입한다.

거리에서, 가정에서 DDR의 인기는 폭발적이다.

우리 사회엔 또 하나의 열풍이 있다.

바로 벤처다.

증권거래소의 거래대금을 뛰어넘은 코스닥시장, 5천개를 넘어선 벤처기업,
안정된 직장을 미련없이 버리고 벤처로 뛰어드는 직장인, 대학생들의 고시병
을 단숨에 치료해 버린 상아탑의 창업바람, 새로운 산업의 메카로 떠오르는
테헤란밸리...

새천년 한국의 가장 큰 화두가 된 벤처의 위력을 실감케 한다.

벤처와 DDR.

이 두가지 열풍은 통하는 점이 있다.

DDR는 손가락으로 버튼만 누르던 기존 오락기와 차별화된다.

사용자는 발과 손을 움직이며 게임에 참가해야 한다.

직접 무대에 서서 주인공이 되는 셈이다.

벤처경영자나 벤처투자자도 마찬가지다.

요즘 벤처기업에선 밤샘 작업이 보통.

하지만 벤처인들은 피곤함을 모른다.

왜 일까.

자신이 회사의 주인이라고 굳게 믿어서다.

힘들지만 "우리 회사"가 쑥쑥 커가는 것을 보며 보람을 느낀다.

성공하면 금전적인 보상도 엄청나다.

투자자들 사정도 다르지 않다.

지난날 한국의 소액주주들은 대기업으로부터 어떤 대우를 받았던가.

이리저리 무시당하고 억울한 손해도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벤처기업에 투자하면 사정이 다르다.

내가 투자한 적은 돈이 벤처기업엔 성장의 결정적인 밑거름이 될 수도 있다.

성공의 풍성한 열매도 함께 나눠가질 수 있다.

최근 벤처열풍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소리가 적지 않다.

거품이니 과열이니 하는 말이 끊이지 않는다.

그렇다.

한국 벤처산업은 아직 제도 인프라 의식수준 등에서 많은 취약점을 갖고
있다.

코스닥지수도 언제 어떤 식으로 곤두박질칠지 알수 없다.

하지만 잊어선 안될 사실이 있다.

벤처열풍의 원인이 단순히 벤처기업의 높은 성장 가능성이나 정부지원책
등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 깊은 뿌리엔 "이제 주인공으로 대우받고 싶다"라는 일반인들의 항변이
담겨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벤처에 담긴 이 염원은 새로운 시대의 사회와 문화를 바꾸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샐러리맨 소액투자자 등을 무시하는 풍토가 없어지지 않는한
벤처열풍은 늦은 밤까지 열기를 내뿜는 DDR처럼 쉽게 식지 않을 것이다.

< 서욱진 벤처중기부 기자 venture@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1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