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노코리아 2000] 제2부 : (10.끝) (전문가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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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래 < 한국외국어대 교수 >
본질적으로 근대 과학기술은 서양의 문화다.
그 서양문화를 우리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바로 한국과 선진국간 시간의
차이를 극복하려는 의식적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 일본이 세계적 기술대국으로 등장한 것은 이상할 것이 없는 역사적
결실이다.
중국은 얼핏 보기에는 우리보다 못한 부분이 있을지 모르지만, 국민적
"과학 마인드"로 따지자면 우리보다 한 수 앞서 있다.
이 또한 역사적 필연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한국보다 훨씬 앞서 근대적 과학기술을 받아들였다.
한국이 과학기술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 시간의 핸디캡을
보다 빨리 극복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것은 의식적이고 국민적인 "과학 마인드" 만들기 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한번 대대적으로 북치고 장구쳐서 벌리는 굿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과학기술의 새마을운동을 하자는 것도 아니다.
우리 한국인의 생활 모든 분야에 과학기술이 몸에 밸 수 있는 기회를 더
널리, 더 깊이 만들어 가야 한다는 말이다.
예를 들자.
우리는 흔히 우리의 과학기술을 드높이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원대한 기술개발 계획을 세우며 그것을 대를 이어 강력하게 추진할 정치적
지도자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러면 좋을지 모른다.
하지만 과연 장기적인 비전, 국가 백년대계를 위한 기술개발 계획이 가능한
생각일까.
이 문제에 대해서는 국민적 합의랄까하는 것에 도달한다는 것이 불가능
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제법 민주화된 우리 한국사회에서 수십년전의 아무개와 같은 독재자가
나와서 그런 계획을 세우고 강력하게 추진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을 것 같다.
혹시 그런 사람이 있다면 꿈 깨야 할 것 같다.
이제 한국과 같은 나라에서도 그런 시대는 영원히 오지 못할 것이기 때문
이다.
당연히 정권이 바뀌면 장기 계획도 수정될 수 밖에 없다.
다만 우리가 지금 노력해야 할 문제는 과학기술의 장기 계획에는 정치적
고려가 될 수 있으면 덜 반영되는 그런 풍토를 만들어 놓는 일이다.
그것은 정권이 과학기술 정책과 집행에 까지 용훼하는 그런 사회에서
우리가 하루 속히 벗어나야 하는 문제를 안고 있고 이는 당분간 해결되기
어려운 우리 정치문화의 후진성에 그 원인이 있다.
하물며 대체로 현실 정치에 연결돼 국가 과제를 입안하는 자리에 있는
과학기술자들은 그들 나름대로 편견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인물들이 만들어 놓은 국가 계획이 장기간 후세에 지켜질 까닭은
더욱 없을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는 선거를 통해 그런 정치 풍토 만들기에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관심을 갖는
방향으로 국민의 교육수준이 향상되고 교육개혁이 우선돼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 교육은 각 분야 전문가들의 자기만족을 위해 존재해 왔다.
국어과목은 국어 전문학자를 위해, 수학 과목은 수학 교수들의 자기만족을
충족시키기 위해, 물리과목은 물리학 전문가들을 위해...
도대체 초등학교에서 중등 그리고 심지어 대학에서까지 왜 국어와 국사를
가르쳐야 하는지 종합적으로 생각하는 일이 없다.
오늘의 국어 교과서에는 당연히 오늘 우리 인간의 초미의 관심사인 정보혁명
이나 유전자혁명을 소개하는 글을 넣어 읽을 기회를 주는 것이 대단히 중요
하다.
그런 내용이 교재에 없다보니 엉뚱하게 대학에서는 논술이란 과목을 새로
발명해 그런 시사성있는 문제에 대해 보충 국어 시험을 보는 셈이다.
다른 예를 들자면 물리 교육이 터무니없이 어려운 것도 문제다.
마치 중고교에서 물리를 가르치는 것이 전국의 중학생 고등학생을 물리학자
로 기를 태세로 보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중고교생들이 물리학으로 먹고 살 것도 아닌데 그렇게 어려운
물리를 모두에게 가르칠 필요가 어디 있는지 한번이나 물리학 교수 이외의
사람들이 생각이나 해 보았단 말인가.
거의 모든 과목이 마찬가지다.
전국민을 과학자로 만들 수 있다는 환상을 버려야만 과학기술이 이 땅에
자리잡을 수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진정한 교양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과학기술 문제를 익혀 두는
일은 앞으로 점점 더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그런데도 그 많은 사람들이 목을 매고 있는 사법시험 같은 국가고시에는
과학 교양을 테스트하는 과목이 없다.
인터넷 해킹이 세계적 과제로 등장하고 있는 이 시대에 과학기술에 대한
교양이 없는 인간이 무슨 사회 조정기능을 담당할 수 있을까.
심히 적정스런 일이다.
지금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과학기술에 대한 교양은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도 고등학교에서 문과와 이과를 하늘이
정해준 구분이나 되는 것처럼 딱 갈라놓고 있다.
그런 구별이 존재하는 한 과학자 기술자는 글쓸 줄 몰라도 그만이고 말할
줄 몰라도 그만이다.
그러니 그런 사람은 정치에서는 제외돼도 그만이란 의식이 굳어질 수밖에
없다.
전세계 어느 나라보다 과학기술계 인사의 정계 참여가 떨어지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일 것이 분명하다.
< parkstar@unitel.co.kr >
-----------------------------------------------------------------------
<> 필자 약력 <>
<>서울대 물리학과
<>미국 캔자스대 과학사 석사
<>미국 하와이대 박사
<>한국과학사학회장
<>저서:한국사에도 과학은 있는가 등 다수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16일자 ).
본질적으로 근대 과학기술은 서양의 문화다.
그 서양문화를 우리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바로 한국과 선진국간 시간의
차이를 극복하려는 의식적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 일본이 세계적 기술대국으로 등장한 것은 이상할 것이 없는 역사적
결실이다.
중국은 얼핏 보기에는 우리보다 못한 부분이 있을지 모르지만, 국민적
"과학 마인드"로 따지자면 우리보다 한 수 앞서 있다.
이 또한 역사적 필연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한국보다 훨씬 앞서 근대적 과학기술을 받아들였다.
한국이 과학기술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 시간의 핸디캡을
보다 빨리 극복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것은 의식적이고 국민적인 "과학 마인드" 만들기 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한번 대대적으로 북치고 장구쳐서 벌리는 굿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과학기술의 새마을운동을 하자는 것도 아니다.
우리 한국인의 생활 모든 분야에 과학기술이 몸에 밸 수 있는 기회를 더
널리, 더 깊이 만들어 가야 한다는 말이다.
예를 들자.
우리는 흔히 우리의 과학기술을 드높이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원대한 기술개발 계획을 세우며 그것을 대를 이어 강력하게 추진할 정치적
지도자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러면 좋을지 모른다.
하지만 과연 장기적인 비전, 국가 백년대계를 위한 기술개발 계획이 가능한
생각일까.
이 문제에 대해서는 국민적 합의랄까하는 것에 도달한다는 것이 불가능
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제법 민주화된 우리 한국사회에서 수십년전의 아무개와 같은 독재자가
나와서 그런 계획을 세우고 강력하게 추진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을 것 같다.
혹시 그런 사람이 있다면 꿈 깨야 할 것 같다.
이제 한국과 같은 나라에서도 그런 시대는 영원히 오지 못할 것이기 때문
이다.
당연히 정권이 바뀌면 장기 계획도 수정될 수 밖에 없다.
다만 우리가 지금 노력해야 할 문제는 과학기술의 장기 계획에는 정치적
고려가 될 수 있으면 덜 반영되는 그런 풍토를 만들어 놓는 일이다.
그것은 정권이 과학기술 정책과 집행에 까지 용훼하는 그런 사회에서
우리가 하루 속히 벗어나야 하는 문제를 안고 있고 이는 당분간 해결되기
어려운 우리 정치문화의 후진성에 그 원인이 있다.
하물며 대체로 현실 정치에 연결돼 국가 과제를 입안하는 자리에 있는
과학기술자들은 그들 나름대로 편견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인물들이 만들어 놓은 국가 계획이 장기간 후세에 지켜질 까닭은
더욱 없을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는 선거를 통해 그런 정치 풍토 만들기에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관심을 갖는
방향으로 국민의 교육수준이 향상되고 교육개혁이 우선돼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 교육은 각 분야 전문가들의 자기만족을 위해 존재해 왔다.
국어과목은 국어 전문학자를 위해, 수학 과목은 수학 교수들의 자기만족을
충족시키기 위해, 물리과목은 물리학 전문가들을 위해...
도대체 초등학교에서 중등 그리고 심지어 대학에서까지 왜 국어와 국사를
가르쳐야 하는지 종합적으로 생각하는 일이 없다.
오늘의 국어 교과서에는 당연히 오늘 우리 인간의 초미의 관심사인 정보혁명
이나 유전자혁명을 소개하는 글을 넣어 읽을 기회를 주는 것이 대단히 중요
하다.
그런 내용이 교재에 없다보니 엉뚱하게 대학에서는 논술이란 과목을 새로
발명해 그런 시사성있는 문제에 대해 보충 국어 시험을 보는 셈이다.
다른 예를 들자면 물리 교육이 터무니없이 어려운 것도 문제다.
마치 중고교에서 물리를 가르치는 것이 전국의 중학생 고등학생을 물리학자
로 기를 태세로 보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중고교생들이 물리학으로 먹고 살 것도 아닌데 그렇게 어려운
물리를 모두에게 가르칠 필요가 어디 있는지 한번이나 물리학 교수 이외의
사람들이 생각이나 해 보았단 말인가.
거의 모든 과목이 마찬가지다.
전국민을 과학자로 만들 수 있다는 환상을 버려야만 과학기술이 이 땅에
자리잡을 수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진정한 교양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과학기술 문제를 익혀 두는
일은 앞으로 점점 더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그런데도 그 많은 사람들이 목을 매고 있는 사법시험 같은 국가고시에는
과학 교양을 테스트하는 과목이 없다.
인터넷 해킹이 세계적 과제로 등장하고 있는 이 시대에 과학기술에 대한
교양이 없는 인간이 무슨 사회 조정기능을 담당할 수 있을까.
심히 적정스런 일이다.
지금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과학기술에 대한 교양은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도 고등학교에서 문과와 이과를 하늘이
정해준 구분이나 되는 것처럼 딱 갈라놓고 있다.
그런 구별이 존재하는 한 과학자 기술자는 글쓸 줄 몰라도 그만이고 말할
줄 몰라도 그만이다.
그러니 그런 사람은 정치에서는 제외돼도 그만이란 의식이 굳어질 수밖에
없다.
전세계 어느 나라보다 과학기술계 인사의 정계 참여가 떨어지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일 것이 분명하다.
< parkstar@unitel.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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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약력 <>
<>서울대 물리학과
<>미국 캔자스대 과학사 석사
<>미국 하와이대 박사
<>한국과학사학회장
<>저서:한국사에도 과학은 있는가 등 다수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1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