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서용훈(25.한양대 국제대학원 휴학중)씨는 음악저작권 관련 단체로부터
개인 홈페이지를 폐쇄하라는 압력을 받는다.

서씨는 몇달 전부터 한국가요를 인기순위 형식으로 해외에 소개하는 MP3
사이트를 운영해 오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PC통신의 대중가요 MP3 음악서비스가 저작권을 둘러싼 관련
업체들간의 마찰로 중단되면서 개인들이 운영하던 MP3 사이트에도 불똥이
튄 것이다.

서씨는 비록 취미생활로 시작했지만 쉽게 물러설 수 없었다.

무엇보다 MP3 음악팬으로서 MP3 서비스가 수요자인 네티즌을 무시한채
일방적으로 중단된 것에 분개했다.

"당사자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MP3를 대중화한 장본인인 네티즌들이 더이상
컴퓨터로 음악을 들을 수 없게 돼 안타까웠습니다. 그렇다고 기존 대중음악
을 MP3로 올리는 사이트는 불법으로 규정돼 더이상 운영할 수도 없었죠.
저작권 등의 문제로부터 벗어나 뮤지션과 네티즌들이 자유롭게 음악을 나눌
수 있는 사이버 공간이 절실하게 필요했습니다"

서씨는 치과의사 회사원 등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알게 된 네티즌들의 지원을
받아 한국 최초의 "합법적"인 무료 MP3 사이트 "밀림"(www.millim.com)을
열었다.

지난해 6월9일로 홈페이지 폐쇄 압력을 받은지 한달만이다.

네티즌들 사이에서 "사이버 차트"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MP3 자유지대"
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우선 노래가 필요했다.

서씨는 한양대 기계공학과에 재학중인 남영우(25)씨 최한주(24)씨와 함께
실력있는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을 만나기 위해 홍익대 근처의 록카페 등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나 초기에는 뮤지션들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았다.

뮤지션들로부터 문전박대당하는 수모를 수없이 겪었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이 찾아와 무턱대고 곡을 MP3로 만들어 무료로
사이트에 올려달라고 하니 호의적으로 나올 리가 없었다.

인터넷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MP3 문제로 떠들썩한 상황에서 이들의
순수성을 의심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가진 것이라곤 열정밖에 없는 우리로서는 몸으로 때우는 수밖에 없었죠.
공연무대를 청소하고 음료를 나르면서 뮤지션들과 친해졌습니다. 그리고
나서 음반제작이나 유통에 따르는 자금 없이 음악팬들로부터 순수하게 실력
으로 평가받을 수 있고 폭발적인 전파력을 지닌 인터넷의 무한한 잠재력과
가능성에 대해 열심히 설득했습니다"

이같은 노력으로 사이트 개설 한달만에 언더그라운드 가수들의 20여곡을
올릴 수 있었다.

조회 수도 하루 2천회를 넘기 시작했다.

"밀림"은 네티즌들의 흥미를 끌기 위해 순위개념을 도입했다.

네티즌들은 사이트에 오른 곡들을 1분 정도 들어본 후 다운로드를 결정한다.

다운로드 수와 네티즌들이 감상한 후 주는 평점에 따라 곡들의 인기순위를
정해 "밀림차트"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또 뮤지션들과 네티즌들 사이의 "커뮤니티" 형성에 주안점을 뒀다.

각 뮤지션별로 고유의 게시판을 운영,뮤지션과 네티즌들이 음악적인 의견을
나누고 자연스럽게 팬클럽이 형성되도록 지원했다.

결과는 대성공.

"밀림"은 경제적인 사정이나 음악 성향으로 현실공간에서 데뷔하기 어려운
뮤지션들이 그들의 음악을 알리는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실력있는 언더그라운드 뮤지션과 가수지망생들이 "밀림"에 모여들었고
다양한 음악을 원하는 네티즌들이 밀림을 찾았다.

현재까지 "밀림"을 통해 곡을 발표한 뮤지션이 2백여명에 이르고 MP3
다운로드 수는 50만을 넘어섰다.

1주일에 수십곡의 새로운 노래들이 "밀림"을 통해 발표된다.

서정희 펑키드 넷보이 듀얼 등 "밀림 스타"들도 배출됐다.

네티즌들의 평가에 따라 실시간으로 바뀌는 "밀림차트"는 그 권위를 인정
받아 아이팝콘 클럽포유 오픈타운 등 여러 사이트에서 사용되고 있다.

이같은 인기에 힘입어 "밀림"은 지난 1월초 정식 법인으로 등록하고 엔젤
투자자와 대기업으로부터 투자받아 자본금 2억원, 직원 6명의 벤처기업으로
재출범했다.

학교 근처의 PC방을 전전하며 작업하던 "PC방 벤처"를 졸업하고 강남구
도곡동에 자그마한 사무실도 마련했다.

"밀림"은 최근 사이버 뮤지션들의 음악을 모은 옴니버스 앨범을 발표했다.

서용훈 대표는 "밀림의 주인공은 바로 뮤지션들"이라며 "그들과 팬들이
사이버 공간뿐 아니라 음반 공연 등을 통해 현실공간에서도 만나게 하는게
우리가 할 일"이라고 말한다.

뮤지션들이 사이버 공간을 통해 실력을 검증받고 이를 바탕으로 현실공간에
데뷔하는 "밀림 방식"은 기존 업계로부터도 주목받고 있다.

일부 기업은 이미 "밀림"과 유사한 사이트를 준비중이다.

한 대학원생의 반발심에서 출발한 "문화게릴라" 사이트 "밀림"은 인터넷이
일으키는 "문화변혁"을 주도하는 힘으로 부상하고 있다.

< 송태형 기자 toughlb@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1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