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쌈지'' 천호균 사장 부부 ''서양화가 이진경씨 작품'' ]

패션업체 "쌈지"의 천호균 사장과 그의 부인 정금자 감사는 요즘 한 신예
미술가의 작품세계에 푹 빠져 있다.

올해 서른을 갓 넘긴 서양화가 이진경씨가 바로 그 사람이다.

천 사장의 집과 서울 방이동에 있는 쌈지 본사 사옥은 두사람이 수집한
이씨의 작품들로 가득차 있다.

반짝이 구슬과 작은 스팽글이 촘촘히 달린 소파, 두툼한 굽이 인상적인
구두조각, 벽에 걸린 거친 질감의 추상화 등 사무실을 장식하고 있는 물건들
중 이씨의 작품이 아닌 것이 없을 정도다.

심지어 천 사장과 정 감사의 가슴에 달려있는 만화같은 브로치도 이진경씨
의 손길이 닿은 액세서리다.

두사람은 이씨가 만든 작품은 종류별로 거의 다 사 모았다고 자신들의
컬렉션 열기를 밝혔다.

"이씨의 작품을 본 순간 "아! 쌈지다"라는 느낌이 팍 왔습니다. 우리가
머릿속에 그려왔던 브랜드의 이미지와 너무 닮아 있었던 거예요"

순수해 보이고 솔직하고 꾸밈없고 어딘지 촌스러워 보이고...

천 사장 부부가 이씨의 작품에 홀딱 반해 버린 이유다.

형식과 틀을 벗어난 자유로움도 좋았다.

"지난 92년 쌈지를 처음 만들 당시만 해도 가죽가방은 모두 딱딱한 사각
모양뿐이었습니다. "왜 가죽은 그렇게 표현돼야만 하지? 좀더 자유로운
디자인이 나올 수는 없을까?" 하는 의문이 들더군요. 그래서 생각해 낸게
부드러운 가죽으로 만든 일명 거지백입니다"

거지백은 대히트를 쳤고 쌈지는 패션잡화업계에서 가장 큰 기업으로 성장
했다.

실제로 촌스러움과 자유로움은 이 회사 디자인 정신의 근간이 된다.

천 사장은 "쌈지 제품을 통해 촌스럽지만 숨기고 싶지 않은 우리문화를
보여 주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의 자유로운 발상이 없었더라면 순우리말 이름을 가진 브랜드들(쌈지
딸기 놈)은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또 매력적인 딸기 캐릭터들(딸기양과 남자친구 수박군, 여자친구 동치미양)
을 보고 웃음짓는 기쁨도 없었음은 물론이다.

스스로 이진경 마니아임을 자처하는 두사람은 장래가 촉망되는 이 신예화가
의 든든한 후견인이기도 하다.

이씨의 전시회를 후원하고 그의 디자인을 제품에 활용했다.

또 카탈로그 제작도 이씨에게 맡겼다.

패션과 문화가 공생하는 회사를 만들자는 천 사장 부부의 꿈이 서서히 결실
을 맺고 있는 것이다.

< 설현정 기자 sol@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1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