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법상 금융통화위원회는 한은의 최고 의사결정기구다.

통화신용정책에 관해 의결하고 한은 운영에 관한 사항을 심의.결정한다.

그러나 그동안 정부정책만 사후적으로 승인한 탓에 "거수기" "통과위"등의
오명을 들어왔다.

그런 금통위가 10일 콜금리를 올리는 결정을 내렸다.

이를두고 모처럼만에 할 일을 한 것으로 평가하는 시각도 있다.

금통위를 향한 세간의 관심 또한 커져 한은도 내심 즐거워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기자가 보기로는 이번 금통위도 종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이날 금통위가 열린 시각은 오전 9시30분.

인상 결정은 한 시간후인 10시30분께 내려졌다.

의외로 싱겁게 끝났다.

배석자 얘기로는 큰 토론없이 자구수정 작업에만 그쳤다고 한다.

금통위원들간의 사전 접촉이 잦은 점등을 감안하면 미리 충분한 논의가
있었겠거니 생각해볼 수도 있다.

그러나 금리인상을 결정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면 주도권은 금통위에
있지 않았음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한은이 콜금리를 올릴 것이라는 얘기는 지난 7일부터 집행간부들의 입을
통해 간간이 흘러나왔다.

9일에는 재정경제부쪽에서 콜금리 인상폭(0.25%포인트)이 구체적으로
언급되기도 했다.

한은 집행간부들이 정부와 사전 협의하는 과정에서 콜금리 인상 정보가
새나갔다는 후문이다.

여기서 정보의 유출여부는 중요치 않다.

문제는 한은 집행간부들에 의해 콜금리 인상방침이 진작에 결정됐다는
점이다.

사실 한은 집행부와 금통위원들간의 알력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집행간부들은 금통위가 결정을 제대로 하도록 관련 자료를 제공하고 금통위
결정사항을 충실히 집행하는 임무를 띠고 있다.

콜금리 인상을 결정할 권한은 없다.

그런데도 집행간부들은 이제껏 줄곧 금통위원들보다 더 막강한 힘을
행사해왔다.

이런 과정에서 일부 금통위원들이 심한 불만을 제기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금통위원들이 통화정책의 중심에 서지 못하고 헤매는 것은 제도적인 문제
탓도 있다.

금통위원들은 인사권한이 없다.

칼자루를 쥐고 있지 않은 자리에 힘이 모일리 없다.

집행간부와 금통위원 간의 업무가 겹치는 것도 문제다.

일부에선 금통위를 활성화하려면 집행부를 없애야한다는 지적도 내놓는다.

금통위가 "핫바지저고리"라느니 집행부가 "월권을 한다"느니 하는 말들은
언제쯤 사라질 지 궁금하다.

< 이성태 경제부 기자 steel@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