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목(49) 학산 사장.

무너진 신발산업을 다시 일으키겠다며 분연히 일어선 기업인이다.

그것도 토종 브랜드로.이름도 거창한 "비트로(Vitro)"다.

"빛으로"에서 따온 것이다.

부산 광안동에 있는 본사 2층 사장실은 손이 곱을 정도로 춥다.

직원용 사무실과는 달리 난방기기가 없기 때문.

그런데도 이 사장의 얼굴은 붉은 빛을 띠고 있다.

나이키 리복 등에 안방을 내준 신발산업의 자존심을 되찾겠다는 오기로
가득차 있어서다.

그는 세계적인 브랜드로 일궈낼 때까지는 온풍기를 사지 않을 작정이란다.

비트로는 부산 경남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미 테니스화 배드민턴화 시장을 장악했다.

지역상표 수준이던 브랜드가 수도권을 비롯한 전국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
했다.

부산에서 인기를 끈 뒤 전국과 일본을 강타한 노래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연상시킨다.

지난 1988년 창업된 학산이 비트로라는 브랜드를 선보인 것은 1994년.

생산제품을 러닝화 에어로빅화 등으로 넓히다가 이제는 시장규모가 큰
축구화 분야에도 도전장을 냈다.

학산의 매출은 1997년 3백63억원에서 98년 5백22억원, 99년에는 7백9억원
으로 뜀박질했다.

올 목표는 1천억원.

연평균 신장률이 40%에 이른다.

매출액 면에서도 신발업체중 정상권에 올라섰다.

학산의 고유브랜드 비중은 아직 10% 수준.

이마저도 대단한 성과다.

그만큼 청소년들의 외국 유명브랜드 선호가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라코스테 엘레세 아디다스 오카모토 등 10여개 유명브랜드를 달고
수출된다.

신발은 스포츠 스타를 모델로 한 광고가 성공의 요체.

하지만 이를 거부했다.

오로지 품질로 승부했다.

질이 좋으면 입에서 입으로 전달된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

주위에서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고 비웃었지만 달걀로 바위를 때리기
시작했다.

고려대 화학과를 나와 범표 신발로 유명한 삼화에서 잔뼈가 굵은 이 사장은
신발산업 1세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이 있는데 왜 못하겠느냐며 달려들었다.

"목숨을 바쳐 해보고 그래도 안되면 혼까지 바치겠다"는 이 사장이 언제쯤
온풍기를 사게 될지 관심거리다.

< 김낙훈 기자 nhk@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1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