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공기업 민영화와 관련된 정책당국자들의 언급은 ''궤도수정 인상''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다.

외환위기 상황에서 결정됐던 공기업 민영화의 원칙들을 경제사정이
좋아지면서 재검토하는 과정으로 해석된다.

우선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재경부의 움직임부터 그렇다.

이헌재 장관은 지난달 "현재 외환보유고가 7백56억달러 수준으로 외화초과
공급 상황인 만큼 공기업 해외매각시 외화유입이 환율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매각일정을 탄력적으로 운용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더구나 지난 1월 26개월만에 무역적자를 기록한 이후 정부의 환율안정에
대한 집착은 더욱 강화된 느낌이다.

재경부는 달러 과다유입으로 원화가치가 급등할 경우 기업들의 수출에 차질
을 빚을 것을 우려한다.

외환유동성 위기도 극복한 만큼 달러가 아쉬운 상황이 아닌 점도 궤도수정
에 한몫하고 있다.

진병화 국고국장은 "우량한 공기업을 굳이 해외에 매각할 이유가 별로
없다는 지적이 많다"며 "연초에 공기업뿐 아니라 은행들의 해외DR(주식예탁
증서) 발행과 후순위채 매각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어 제값을 받기 위해서는
매각시기와 물량 조정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또 담배인삼공사를 비롯한 대부분 공기업 주식이 공모가를 밑도는 상황에서
헐값에 내다팔 필요가 없다는 것이 재경부의 입장이다.

정부는 이와함께 공기업민영화 방식에 대해 소득분배개선 차원에서도 접근
한다.

김유배 복지노동수석은 지난 1일 정책토론회에서 "공기업의 국민주방식
민영화"를 통해 근로자들의 재산형성에 기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 궤도수정 조짐 =이미 구체적인 스케줄 변화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기간산업의 해외매각에 내심 소극적인 입장이던 산자부는 한국전력의 발전
자회사 민영화시 지분제한 등을 적극 검토할 태세다.

지난해 한전 노조가 해외매각 등에 반대, 발전자회사 분할과 민영화 관련
법안이 지난해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노조와 국회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구조개편의 강도를 다소 낮추는게 불가피
한 상황이다.

산자부는 지난해부터 추진해 오던 가스공사의 해외DR 발행에도 유보적인
태도로 전환하고 있다.

국내증시상황과 외환사정을 봐가며 신축적으로 자금조달방법을 바꾸겠다는
입장이다.

외화가 넘쳐 원화가치가 오를 경우 해외DR를 발행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담배인삼공사의 경우도 주식 싯가가 공모가를 밑돌고 있어 시장상황에 따라
해외DR 발행 계획이 하반기로 늦춰질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 개혁후퇴와 대외신인도 추락 우려 =재경부는 경제논리를 내세워 민영화
작업을 신축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노사문제나 정치적인 변수들
이 재경부 논리에 편승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이주선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공기업 주식의 해외매각이 달러유입에
따른 환율하락을 초래해 국가이익에 해가 된다는 주장은 난센스"라고 일축
했다.

그는 "공기업 지분의 해외매각을 철회하겠다는 발상은 정부가 공기업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해 민영화를 유보한다는 오해를 낳을 수 있다"며
"시류에 따라 민영화에 대한 총론이 흔들려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학계의 한 전문가는 "민영화 정책에 대한 일관성이 상실될 경우 공공부문
개혁 자체가 실패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남일총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도 "공기업 지분의 해외매각이나
외국업체와의 전략적 제휴는 민영화의 필수적인 수단"이라며 "국익에 손해가
가지 않도록 공기업 해외매각 물량이나 시기를 조정하되 민영화 자체는 당초
계획대로 추진돼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지난해 9월 한국개발연구원 경제정보센터가 경제전문가 3백78명을 포함해
총 1천5백78명을 대상으로 벌인 "공기업 민영화에 대한 인식.평가" 설문조사
에서도 일반국민의 64.5%와 경제전문가 95.3%가 공기업의 경영효율성이
낮다고 평가했다.

또 일반국민의 80.4%, 경제전문가의 93.1%가 단기적인 실업증가에도 불구
하고 공기업 민영화는 과감히 추진돼야 한다고 밝혔다.

< 김병일.유병연 기자 kbi@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