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의 빌 게이츠 회장이 최고경영자(CEO)직을 스티브
발머 사장에게 넘겨준 것을 두고 정보통신업계가 들썩거린다.

과연 그의 속내는 무엇인가를 두고 분석도 다양하다.

"사실상 은퇴한 것으로 앞으로는 자선사업에 심혈을 기울이지 않을까"하는
주장에서 "독점금지법 소송에 전력투구하기 위한 것"이라는 얘기와 "새로운
기술적 전략을 짜내기 위한 일보후퇴일 것"이라는 분석까지 등장한다.

그러나 게이츠 회장의 움직임과는 무관하게 일반적으로 의견이 일치하는
분석은 정보통신(IT) 산업이 큰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게이츠는 오비이락격으로 지각변동의 와중에 물러나 더욱 주목을 받는
셈이다.

일본 시사주간지 아에라(1월31일)가 진단하는 지각변동의 내막을 들여다
본다.

지난해 가을, 빌 게이츠 회장의 퇴진보다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 한마디가
스티브 발머 사장의 입에서 나왔다.

"우리 회사는 사시인 PC 중심주의를 빨리 버려야 한다"는 얘기였다.

여기서 말하는 사시란 게이츠 회장이 지겹도록 주창해 왔던 "모든 사무실과
가정에 PC를"이란 캐치프레이즈다.

결국 발머 사장의 발언은 게이츠 회장의 꿈을 포기하라는 말로 PC시대의
패권기업이었던 MS가 스스로 한 시대의 종언을 선언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탈PC시대가 곧 인터넷을 연계고리로 한 네트워크 전성시대의
도래를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모든 전자제품과 휴대전화가 네트워크에 접속한다는 전제에서 만들어진다.

그 시장규모나 일상생활에 대한 영향력은 과거와 비교가 될 수 없을 정도로
커질 가능성이 있다.

MS는 PC시대의 패권기업이었으나 이제 네트워크시대에는 광활한 대지를
개척해 나가는 하나의 도전자에 불과하게 됐다.

그 네트워크시대의 모습은 아직까지 오리무중이다.

이런 단면들을 예상할 수 있다.

냉장고가 네트워크에 연결돼 있어 평소에 입력돼 있던 식료품의 개수가
부족해지면 자동적으로 슈퍼마켓에 주문이 들어가고 배달되는 모습과 같은
것이다.

과연 네트워크시대의 패권자리는 누구에게 돌아갈까.

주도권 싸움은 두세 가지의 분야에서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회선을 둘러싼 각축이다.

전화회선.케이블TV회선 등 유선과 휴대전화와 같은 무선이라는 두가지
부문에서 각각 경쟁이 일어난다.

다른 하나는 PC때와 마찬가지로 운용소프트웨어(OS)다.

즉 네트워크를 통해 흘러다니게 될 수많은 정보를 어떤 규격으로 기록하고
송.수신할 것인가를 정하게 될 OS를 둘러싸고 경쟁이 벌어진다.

TV 냉장고 목욕시설까지 모든 생활주변이 네트워크로 연결되면 관련된
모든 기기에 OS가 실려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렇게 되면 OS는 과거와는 한차원 다른 큰 시장을 형성하게 된다.

MS는 네트워크시대에 OS를 둘러싼 경쟁에서 패권기업이 되고자 시도할
것이다.

그 추진구상이 "차세대 윈도 서비스"라 명명된 네트워크 용도의 윈도구상
이며 게이츠 회장이 CEO직에서 물러난 것은 추진구상을 현실화하는 작업에
전력하기 위한 포석이란 견해가 강하게 대두되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다음달 발매에 들어갈 것으로 보이는 "윈도 2000"이 앞으로
네트워크 단말기의 주력이 될 휴대전화에 대한 대응 등이 빈약함을 들어 MS
가 비대화됐으며 시대의 흐름을 읽는 감성이 약해졌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게이츠 회장 스스로가 개발일선에 심혈을
기울이려 한다는 얘기다.

PC가 처음 보급되기 시작할 때 그 시장의 패권적 지위를 OS가 잡을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네트워크시대에도 어디가 금맥인지, 누가 그것을 정확히 맞출 수 있는지
정말로 알고 있는 사람은 눈에 띄지 않는다.

각 기업들은 미지의 세계를 향해 돌진하고 있을 뿐이다.

다만 기본적인 틀이 변하는 시대에 비즈니스를 하는 데는 거대자본의 역할
이 갈수록 막중해진다.

이 때문에 ATT AOL 타임워너 IBM MS 야후 소니 등 뒷무대에서는 대규모의
기업매수합병을 성사시키려는 노력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 박재림 기자 tree@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