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정치가 '쇼 비즈니스'라고 .. 고승철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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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철 < 산업 2부장 >
1980년 미국 대통령선거 때의 일이다.
카터 후보와 레이건 후보가 TV토론을 벌였다.
설전이 불을 뿜을 무렵 레이건 후보의 보좌관이 쪽지 하나를 레이건에게
건네주었다.
메모엔 "웃으십시오!(Chuckle!)"라고 쓰여 있었다.
이후 레이건은 싱글벙글 웃으면서 시종 여유를 가졌다.
덕분에 도량이 넓은 사람으로 비쳐졌다.
반면 카터는 진지한 질문을 던지고도 오히려 꼬장꼬장한 인물로 각인돼
점수가 깎였다.
레이건은 시청자들과 2백29초 동안 시선을 마주치는 제스처를 취했으나
카터는 10초에 그쳤다.
레이건은 카터의 공세에 "그 얘기를 또 하시는군요"라면서 교묘하게
피해나갔다.
선거 결과 카터는 1932년 후버 대통령 이래 선거에서 선출된 현직 대통령
으로는 최초로 재선에 떨어진 대통령이 되고 말았다.
영화배우 출신인 레이건은 TV가 만들어낸 대통령일 수 있다.
대중은 TV를 통해 본,거부감을 덜 느끼는 인물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레이건이 퇴임한 뒤 미국의 사학자 4백81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79%가 레이건을 평범한 대통령 또는 그 이하로 평가했다.
"위대한 대통령"이었다고 응답한 학자는 단 1%였다.
인간은 이성적인 동시에 감성적인 동물이다.
통치자는 피치자에게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끊임없이 이성적
정서적 반응을 만들어내려 한다.
이를 위해 상대방 동의에 의한 복종을 이끌어내는 테크닉이 필요하다.
이 테크닉은 "설득"이란 그럴듯한 말로 포장된다.
설득은 어떤 식으로 하는가.
크게 보아 두 가지다.
첫째, 이성에 호소하는 방법인데 이를 크레덴다(Credenda)라고 한다.
둘째, 인간감성을 자극하는 것으로 미란다(Miranda)라 한다.
후자에 의한 상징조작 이벤트는 얼마든지 고안해낼 수 있다.
고전적인 방법으로는 기념건조물 세우기, 특정음악 장려, 과장된 영웅담
유포, 집단 의례, 대중 시위 등이다.
히틀러는 독일 국민들을 선동하기 위해 치밀한 계산에 따라 연설을 했다.
황혼 무렵 햇빛을 등지고 연단에 섬으로써 신비감을 고조시키는 수법을
즐겨 썼다.
한국의 현실을 보자.
정치의 계절이 왔다.
오는 4월 총선을 앞두고 각계 인사들이 너도나도 정치입문의 뜻을 밝히고
있다.
특히 TV에 얼굴을 자주 내비치는 사람들이 나서고 있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단지 대중에게 안면이 널리 알려졌다는 이유만으로
영입되고 있다.
이들은 당선 가능성이 높은 인물로 꼽힌다.
실제로 연예인, 방송국 출신자 가운데 금배지를 단 사람들도 수두룩하다.
특정 분야에서 꽤 전문지식을 쌓은 학자들의 정치계 입문과정 사례를
살펴보자.
TV에 몇번 나와 얼굴이 알려지면 이곳저곳에서 강연요청이 쇄도한다고 한다.
학교에 앉아 차분히 연구에 전념할 수 없게 된다.
이름이 알려지면 TV출연이 더욱 잦아지게 된다.
"텔레페서(telefessor)"가 되는 것이다.
국정 자문에 응하는 무슨무슨 위원이라는 타이틀도 따게 된다.
정치권에서는 마침내 이들의 지명도와 지식을 이용하기 위해 영입한다.
물론 친정치권 성향의 학자들이 이런 활동에 주로 나선 결과이기도 하다.
"정치는 쇼 비즈니스다"라고 어느 학자는 외쳤다.
정치가 우리의 삶을 규정하는 매우 중요한 활동이므로 쇼 비즈니스로
흘러서는 안 되는데 그렇게 돌아가고 있는 현실을 개탄한 지적이다.
이렇게 정치가 희화화(희화화)되는데도 숱한 인사들이 "파워 엘리트"
대열에 끼기 위해 줄을 선다.
한국에서는 극단적으로 말해 "모든 것은 정치로 귀결된다"고 할 정도다.
의사 변호사 경영인 문화예술인 교수 평론가 등이 자기 분야에서 성공하고
존경받으면 그 길을 계속 걷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이들이 한 길을 가는 것을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금배지가 주는 권력의 달콤한 맛이 그들을 유혹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의 정치입문 동기를 이처럼 도매금으로 폄하하는 것도 무리이긴
하다.
이들 대부분은 별다른 준비도 없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정계에 입문한다.
참담한 실패를 경험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들을 "이디오테"라고 불렀다.
다른 사람들과 아무것도 나누지 않고 자질구레한 집안 일에만 몰두하다
결국 모든 사람들에게 농락당하고 마는 "고립된 개인"을 뜻한다.
영어 "이디어트(idiot:얼간이)"는 이 말에서 온 것이다.
정치는 중요하다.
이렇게 중요한 것을 "쇼 비즈니스"에만 맡겨둘 수는 없다.
좀더 냉철한 이성에 바탕을 둔 정치가 필요하다.
뜻을 갖고 정치를 하려는 인사들은 정치철학을 갖춘 뒤 나서야 한다.
TV에 얼굴 몇번 비쳤다고 충분히 준비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또 정치권력보다 더 소중한 가치도 존중돼야 한다.
< cheer@ 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17일자 ).
1980년 미국 대통령선거 때의 일이다.
카터 후보와 레이건 후보가 TV토론을 벌였다.
설전이 불을 뿜을 무렵 레이건 후보의 보좌관이 쪽지 하나를 레이건에게
건네주었다.
메모엔 "웃으십시오!(Chuckle!)"라고 쓰여 있었다.
이후 레이건은 싱글벙글 웃으면서 시종 여유를 가졌다.
덕분에 도량이 넓은 사람으로 비쳐졌다.
반면 카터는 진지한 질문을 던지고도 오히려 꼬장꼬장한 인물로 각인돼
점수가 깎였다.
레이건은 시청자들과 2백29초 동안 시선을 마주치는 제스처를 취했으나
카터는 10초에 그쳤다.
레이건은 카터의 공세에 "그 얘기를 또 하시는군요"라면서 교묘하게
피해나갔다.
선거 결과 카터는 1932년 후버 대통령 이래 선거에서 선출된 현직 대통령
으로는 최초로 재선에 떨어진 대통령이 되고 말았다.
영화배우 출신인 레이건은 TV가 만들어낸 대통령일 수 있다.
대중은 TV를 통해 본,거부감을 덜 느끼는 인물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레이건이 퇴임한 뒤 미국의 사학자 4백81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79%가 레이건을 평범한 대통령 또는 그 이하로 평가했다.
"위대한 대통령"이었다고 응답한 학자는 단 1%였다.
인간은 이성적인 동시에 감성적인 동물이다.
통치자는 피치자에게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끊임없이 이성적
정서적 반응을 만들어내려 한다.
이를 위해 상대방 동의에 의한 복종을 이끌어내는 테크닉이 필요하다.
이 테크닉은 "설득"이란 그럴듯한 말로 포장된다.
설득은 어떤 식으로 하는가.
크게 보아 두 가지다.
첫째, 이성에 호소하는 방법인데 이를 크레덴다(Credenda)라고 한다.
둘째, 인간감성을 자극하는 것으로 미란다(Miranda)라 한다.
후자에 의한 상징조작 이벤트는 얼마든지 고안해낼 수 있다.
고전적인 방법으로는 기념건조물 세우기, 특정음악 장려, 과장된 영웅담
유포, 집단 의례, 대중 시위 등이다.
히틀러는 독일 국민들을 선동하기 위해 치밀한 계산에 따라 연설을 했다.
황혼 무렵 햇빛을 등지고 연단에 섬으로써 신비감을 고조시키는 수법을
즐겨 썼다.
한국의 현실을 보자.
정치의 계절이 왔다.
오는 4월 총선을 앞두고 각계 인사들이 너도나도 정치입문의 뜻을 밝히고
있다.
특히 TV에 얼굴을 자주 내비치는 사람들이 나서고 있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단지 대중에게 안면이 널리 알려졌다는 이유만으로
영입되고 있다.
이들은 당선 가능성이 높은 인물로 꼽힌다.
실제로 연예인, 방송국 출신자 가운데 금배지를 단 사람들도 수두룩하다.
특정 분야에서 꽤 전문지식을 쌓은 학자들의 정치계 입문과정 사례를
살펴보자.
TV에 몇번 나와 얼굴이 알려지면 이곳저곳에서 강연요청이 쇄도한다고 한다.
학교에 앉아 차분히 연구에 전념할 수 없게 된다.
이름이 알려지면 TV출연이 더욱 잦아지게 된다.
"텔레페서(telefessor)"가 되는 것이다.
국정 자문에 응하는 무슨무슨 위원이라는 타이틀도 따게 된다.
정치권에서는 마침내 이들의 지명도와 지식을 이용하기 위해 영입한다.
물론 친정치권 성향의 학자들이 이런 활동에 주로 나선 결과이기도 하다.
"정치는 쇼 비즈니스다"라고 어느 학자는 외쳤다.
정치가 우리의 삶을 규정하는 매우 중요한 활동이므로 쇼 비즈니스로
흘러서는 안 되는데 그렇게 돌아가고 있는 현실을 개탄한 지적이다.
이렇게 정치가 희화화(희화화)되는데도 숱한 인사들이 "파워 엘리트"
대열에 끼기 위해 줄을 선다.
한국에서는 극단적으로 말해 "모든 것은 정치로 귀결된다"고 할 정도다.
의사 변호사 경영인 문화예술인 교수 평론가 등이 자기 분야에서 성공하고
존경받으면 그 길을 계속 걷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이들이 한 길을 가는 것을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금배지가 주는 권력의 달콤한 맛이 그들을 유혹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의 정치입문 동기를 이처럼 도매금으로 폄하하는 것도 무리이긴
하다.
이들 대부분은 별다른 준비도 없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정계에 입문한다.
참담한 실패를 경험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들을 "이디오테"라고 불렀다.
다른 사람들과 아무것도 나누지 않고 자질구레한 집안 일에만 몰두하다
결국 모든 사람들에게 농락당하고 마는 "고립된 개인"을 뜻한다.
영어 "이디어트(idiot:얼간이)"는 이 말에서 온 것이다.
정치는 중요하다.
이렇게 중요한 것을 "쇼 비즈니스"에만 맡겨둘 수는 없다.
좀더 냉철한 이성에 바탕을 둔 정치가 필요하다.
뜻을 갖고 정치를 하려는 인사들은 정치철학을 갖춘 뒤 나서야 한다.
TV에 얼굴 몇번 비쳤다고 충분히 준비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또 정치권력보다 더 소중한 가치도 존중돼야 한다.
< cheer@ 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1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