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은 새로운 밀레니엄(millenium)을 여는 첫해다.

새천년의 화두는 ''인텔리화'' ''디지털화'' ''글로벌화''로 요약된다.

특히 인터넷 혁명으로 대변되는 디지털화는 국경없는 세상을 만들어 글로벌
화를 실현하고 있다.

디지털의 세계는 새로운 지식을 바탕으로 한다.

인텔리화가 중요한 이유다.

한국경제신문은 차하순 서강대 명예교수, 김경원 사회과학원장, 남궁석
정보통신부장관 등 세분의 석학을 모시고 ''새천년 이렇게 살자''는 주제로
정담을 마련했다.

정담 내용을 요약.정리한다.

<> 차하순 서강대 명예교수 =20세기가 저물고 21세기가 시작됐습니다.

지난 20세기를 한마디로 규정한다면 "빠른 변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과학기술은 물론이고 문명 지식 사상 등 모든 부문에서 눈부신 발전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분명한 것은 21세기에도 이같은 변화가 지속될 것이란 점입니다.

그러나 이에따른 문제점도 없지 않습니다.

과연 인간의 윤리와 도덕이 지식의 발달속도를 통제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어떻게 보면 20세기 전체가 철학의 빈곤에 시달리지 않았나 하는 느낌입니다

지식과 그 매개수단은 엄청나게 발달하고 있는 데 정신적 가치는 오히려
점점 더 퇴색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새천년을 맞는 자세는 어때야 합니까.

<> 남궁석 정보통신부 장관 =문명의 발전이 반드시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었다고는 보기 힘듭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문명의 발달을 거부할 수는 없습니다.

이를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가 관건이겠죠.

현대의 과학기술은 동물의 유전자는 물론 인간의 유전자마저 복제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신의 영역까지 침범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뿐입니까.

새로운 우주로서의 "공간"마저 창조하고 있습니다.

다름아닌 사이버 공간입니다.

과거엔 영토를 확보하려면 전쟁을 일으켜 땅을 빼앗거나 돈을 주고 사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컴퓨터에 통신망만 연결하면 누구나 공간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사이버공간속에서 집도 짓고 상거래도 할 수 있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우주가 열리고 있는 것입니다.

<> 김경원 사회과학원장 =개인 입장에서 사회의 빠른 변화를 수용할 것인가
아니면 거부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이미 논의의 대상이 아닙니다.

중세가 현재보다 행복했다고 중세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1백년전의 산업혁명은 고전적 의미에서 국가의 탄생과 발전을 굳혔습니다.

그러나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정보혁명은 역설적으로 국가의 경계선을 허물어
뜨리고 있습니다.

국경선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이죠.

예를들어 전자상거래의 경우 국가가 중간에 개입해서 관세를 매기는 게
불가능합니다.

인터넷과 신용카드를 이용하면 화폐 없이도 상행위가 얼마든지 가능해집니다

<> 차 교수 =역시 인터넷으로 화제가 모아지는군요.

처음 인터넷이 도입됐을 때 가장 극렬히(?) 저항했던 나라가 프랑스라고
합니다.

인터넷 공용어가 영어라는 이유 때문이었겠죠.

그러나 지금은 어떻습니까.

완전히 굴복했습니다.

프랑스나 독일에선 영국이나 미국 학생들의 영어 아르바이트가 성행하고
있답니다.

인터넷이 만들어가는 세상이 그만큼 "글로벌 스탠더드화"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 남궁 장관 =인터넷은 기존의 많은 가치를 무너뜨릴 겁니다.

교육을 예로 들어보죠.

앞으론 인터넷에 사이버 대학이 생겨 온라인으로 강의를 들을 수 있게
됩니다.

한국의 학생들이 굳이 유학을 가지 않더라도 하버드나 케임브리지대 교수의
명강의를 들을 수 있는 겁니다.

인터넷은 단순한 정보교환의 수단이 아니라 생활방편이 되고 있습니다.

<> 차 교수 =인터넷이 아주 유용한 도구임엔 틀림없지만 궁극적으로 해결
하지 못하는 것도 있지 않을까요.

교육문제도 그 중의 하나인데 예를들어 온라인 교육을 통해 스승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인간적 감화까지 기대하긴 힘들거든요.

인터넷이 지식을 전달할 순 있겠지만 인간성까지 책임질 수는 없는 것입니다

<> 남궁 장관 =모든 사물에 그림자가 있듯 인터넷에도 역기능이 없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인터넷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현재 세계적인 인터넷 사용인구는 2억5천만명 정도로 추산됩니다.

지난 한햇동안에만 1억명이 늘어났습니다.

이런 속도라면 2005년에 8억명 가까운 인구가 인터넷을 사용하게 됩니다.

인터넷이 만드는 세상은 여권없이도 자유로운 여행이 가능하고, 피부색으로
차별받지도 않습니다.

저는 이것을 인터넷합중국( the united states of internet )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에 동참하기 위해선 도로에 해당하는 통신망과 컴퓨터라는 도구, 인터넷
언어인 영어가 필요합니다.

<> 김 원장 =옳은 지적입니다.

인터넷은 미국이 룰을 세팅한 게임입니다.

그런 점에서 "사이버화는 곧 미국화"고 "글로벌화 역시 미국화"라는 비판도
있습니다만 인터넷이나 글로벌화가 대세인것 만큼은 분명합니다.

인터넷은 그 자체가 글로벌의 성격을 띤 도구입니다.

따라서 인터넷 세상에서 단위국가의 국경선이나 국가의 패권은 점점 의미가
퇴색할 거라고 봅니다.

<> 차 교수 =국경이 무너지고 국가의 개념이 희석된다고 해도 국가가 완전히
사라진다고 상상하기는 힘듭니다.

19세기의 많은 지성들이 20세기에 무종교시대가 올 것으로 예측했지만 실제
20세기는 역사상 가장 많은 종교가 발흥했던 시기입니다.

역설입니다만 글로벌화가 진행되는 한편에선 지역주의가 발흥하고 민족국가
단위의 분쟁도 더욱 잦아지는 것도 이같은 현상을 반영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 남궁 장관 =그렇습니다.

글로벌화가 진행될수록 민족과 국가라는 정체성은 오히려 중요해질 겁니다.

다시 인터넷으로 돌아가보면 인터넷 합중국에서도 자신의 고유한 문화나
특성을 갖는 국가와 민족만이 경쟁력이 있는 것이지요.

자기 것을 확실히 가져야 남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문제는 밖으로 외화시킬 때 경쟁력을 갖기위해선 외부로부터의 충격 자체를
거부하거나 외면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란 명제도 이런 차원이지요.

<> 김 원장 =국가라는 명칭을 갖는 조직은 21세기에도 존재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기능은 과거완 현저히 달라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우리나라도 IMF(국제통화기금)관리체제를 겪으면서 경험했습니다만 국가가
경제주권을 일정부분 포기하는 사례가 이제 드물지 않습니다.

국가단위의 경제정책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국제사회와의 연계가 보다
중요하기 때문이지요.

금리나 환율정책만 보더라도 특정국가가 이를 폐쇄적으로 운용하는 것은
이제 상상하기 힘듭니다.

이런 것들이 다 글로벌화의 진행인 것입니다.

경제뿐만 아니고 환경 보건 범죄 등 모든 분야에서 마찬가지입니다.

<> 차 교수 =글로벌화의 또 다른 면이라고도 보여집니다만 글로벌화가
진행될수록 미국의 주도권은 증가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이에대한 저항도 커질 것입니다.

굳이 헌팅턴 교수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문명의 충돌이란 필연적인 것
같은데요.

과거 국가나 민족간의 충돌을 유엔(국제연합)같은 곳에서 해결했다지만
앞으로도 유엔이 이런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 남궁 장관 =앞으로의 단위국가는 문화 경제 군사 등의 각 부문에서 자기
정체성을 갖되 상당 부분을 글로벌한 인터넷 합중국에서 공유하는 형태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인터넷 합중국이 이렇게 위력적인 그 힘은 무얼까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저는 그것을 "빛의 속도"로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인터넷 환경은 빛의 속도가 가능한 인프라입니다.

"빛의 속도"는 곧 "생각의 속도( speed of thought )"이자 "의지의 속도
( speed of will )"입니다.

<> 김 원장 =우리는 글로벌화하는 서양문명에 대항해 우리 것을 지켜야
한다는 강한 정서가 있습니다.

이것이 지나쳐 외부세계에서 벌어지는 변화의 물결을 외면한다면 영원한
2류 국가로 남을 것입니다.

특히 "미국적"또는 "미국식"이라는 이유만으로 반대하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태도입니다.

과학기술의 발달이나 서양식 합리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지만 오히려 우리
에게 필요한 것은 더욱 과학주의와 합리주의로 무장하는 것 아닐까요.

논리적 일관성을 갖추고 의식 생활 스타일을 더욱 과학화하는 것이 우리가
미래의 선진국민이 되기위해 필요한 경쟁력이라고 생각합니다.

<> 남궁 장관 =이젠 "변화를 수용할 것이냐, 배척할 것이냐"를 고민하는게
아니라 "변화를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봅니다.

빨리 변화해서 변화의 선두에 선다면 새로운 미래가 열릴 것입니다.

변화의 추세에 끼기 위해선 변화의 트렌드에 몸을 실어야 합니다.

1백년전 산업화의 물결이 아시아에 몰려왔을 때 이를 받아들인 일본은 이후
아시아의 선두그룹이 됐습니다.

그러나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한국은 지난 1백년동안 고생했습니다.

변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지금은 한국민에겐 다시 없는 기회의 시간입니다.

과거 산업화시대의 기술은 일본을 경유해서 한국에 들어왔습니다만 최근의
정보화기술은 일본을 거치지 않고 직접 들어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이 일본보다 정보화 마인드가 앞서있다는 반증입니다.

우리가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고 있는 것이죠.

<> 김 원장 =저는 이런 생각을 가끔 해봅니다.

북한이란 존재가 과연 우리에게 무엇이냐는 질문입니다.

만일 역사를 관장하는 신이 있다면 왜 굳이 북한을 만드셨을까.

저는 그 해답이 북한의 현재 모습에 있지 않느냐 하는 생각입니다.

즉 폐쇄적 민족주의가 가져다주는 치명적인 폐해를 북한이란 거울을 통해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란 얘기입니다.

북한이야말로 "우리식대로 산다"는 슬로건하에 글로벌화의 "ㄱ"자와도
상대하지 않겠다는 주의잖아요.

그 결과는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명확하다고 봅니다.

<> 차 교수 =물론 우물안 개구리가 돼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러나 본질적인 문제는 우리가 서양문명을 얼마나 정확히 인식하고 있느냐
하는 점입니다.

서양인들조차 자신들의 합리주의에 한계를 느껴 대안을 찾는 마당에 우리만
이를 무비판적으로 다시 수용하려 한다면 이것도 큰 문제입니다.

서양문명의 기저에 깔린 문제를 차분히 짚어보는 지성을 갖추어야 한다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젊은이들이 인터넷 세상에 갖추어야 할 덕목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 남궁 장관 =무엇보다 인터넷 세상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전문가적인
역량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여기엔 영어와 컴퓨터가 필수입니다.

그러나 시대가 아무리 바뀌어도 절대 버릴 수 없는 덕목들이 있습니다.

사랑 인내심 희생정신 등의 가치입니다.

인터넷 시대엔 정보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더욱 심화될 것입니다.

정보를 가진자와 가지지 못한자 간의 골이 깊어지게 되죠.

이런 간격을 메우는 것도 젊은이들의 역할입니다.


<> 김 원장 =세계로 눈을 돌려보면 각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세우고 있는
한국인들이 정말 많습니다.

비단 야구나 골프뿐만이 아니라 성악 미술 정보산업 등 각 분야에서 눈부신
업적을 달성하고 있습니다.

자유분방하고 개성적인 한국인의 특성이 마음껏 발휘될 수 있는 환경만
마련된다면 새 밀레니엄의 주인공은 우리 젊은이들입니다.

< 정리=이의철 기자 eclee@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1일자 ).